정부가 취약계층의 주거복지 확충과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지원을 위해 도입을 추진하는 ‘질 좋은 평생주택’과 ‘지분적립형 분양주택’ 등이 과거 정부 정책에서 사실상 간판만 바꿔 달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여당이 전세난과 집값 고공행진을 두고 수차례 과거 정권 탓을 하면서도 정작 과거 정권에서 시행하다 중단된 정책들을 슬그머니 명칭과 세부 내용 일부만 수정해 다시 도입하려 해 빈축을 사고 있다.
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중 통합 공공임대 사업안 구상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이 ‘중산층까지 포함해 누구나 살고 싶은 질 좋은 평생주택’을 주문한 이후 기획재정부와 국토부 등 관계부처는 세부 방안을 논의해 왔다.
핵심은 그동안 전용면적 기준 60㎡(19평) 등 소형 평수 위주였던 임대아파트 공급을 85㎡(25평)까지 확대해 중산층도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전용면적 85㎡는 공급면적으로는 30평대가 된다.
그러나 30평대 중대형 임대아파트 구상은 박근혜정부 시절 역점 사업이었던 ‘뉴스테이’ 정책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많다. 민간기업형 임대주택으로 불렸던 뉴스테이는 민간건설업체가 시공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형식이었다. 임대료 상승률이 연 5%로 제한되고 최소 8년의 거주가 보장됐다. 하지만 정부의 건설사 지원을 두고 건설사에 대한 특혜라는 논란이 일었고 현 정부 출범 이후에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두성규 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임대주택에 다양한 수요를 맞추려는 노력은 의미 있다고 평가한다”면서도 “그동안 전 정부 부동산 정책을 줄곧 부정해온 정부·여당이 전 정부와 유사한 정책을 추진한다 하니 낯설게 느껴진다”고 꼬집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뉴스테이는 공급 주체가 민간이었지만 이번에는 공공이 직접 공급 주체로 나서기 때문에 다르다”고 설명했다.
주택 가격의 20~25%만 내고 일단 입주한 뒤 나머지 지분을 20~30년에 걸쳐 취득해가는 지분적립형 분양주택 역시 과거 정부 정책을 재탕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08년 시범사업으로 추진된 ‘분납형 임대아파트’는 분양가의 30%만 먼저 낸 뒤 10년 뒤까지 분납하는 형식이었다. 지분적립형 주택과 분양가 잔금 완납 시기가 다를 뿐 골격은 비슷하다.
분납형 임대아파트는 일종의 ‘반값 아파트’로 알려지면서 시범사업에 대한 시장의 반응도 뜨거웠지만, 이후 소리소문 없이 중단됐다. 공급을 맡았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분양 초기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분납형 임대아파트 첫 공급이 이뤄진 2011년 LH의 부채는 130조6000억원으로 전년보다 9조1000억원가량 늘었다.
정부는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의 분양 일정을 최대한 서둘러 2023년부터 분양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시행사인 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의 부채가 많아질 경우 유사한 고민이 생길 수 있다. 자칫 시행사인 공공 업체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분납형 임대아파트 사업처럼 차기 정권이 지분적립형 분양주택 사업을 계속 이끌어가기 어려워지면서 과거 시행착오가 반복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얘기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