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인 스트레스, 전세·월세·매매 규칙 깨진데서 온다

입력 2020-11-10 21:23
시민들이 지난 8일 서울의 한 공인중개업소 매물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전세 매물보다 월세 매물이 많은 게 눈에 띤다.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포스터도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임차인 보호를 위해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등 이른바 임대차 2법을 시행했지만, 법 시행 3개월 동안 임대인은 물론 임차인에게조차 완전히 환영받지는 못하고 있다.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부동산 시장의 변화에 큰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 공개된 월세 매물은 한때 전세 매물을 넘어섰고, 아파트 전셋값이 매매가를 넘어서는 등 기존 부동산 시장에서는 보기 어렵던 현상들이 발생하며 특히 임차인들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임대차 2법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여전히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직방이 최근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임대차 2법이 전월세 거래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묻는 질문에 10명 중 6명(64.3%)이 도움이 안 된다고 답했다. 도움이 안 된다는 대답은 임대인과 자가거주자층에서 75.2%에 달했고 임차인 사이에서도 67.9%나 됐다. 직방이 자사 플랫폼 이용자 115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라는 점을 감안해도 높은 비율이다.

임대인들과 임차인들이 한목소리로 임대차 2법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같은 조사에서 전월세 임차인 가운데 82.1%가 전세 거래를 선호했는데, 이유는 ‘월 부담하는 고정 지출이 없어서’가 48.3%로 가장 많았다. 그런데 이들이 선호하는 전세 매물은 임대차 2법 시행의 영향으로 급격히 줄고 있다.

실제로 부동산빅데이터앱 아실에 따르면 9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월세 매물건수는 총 2만3484건이었다. 이 중 전세 매물은 1만2193건이었고 월세는 1만1291건으로 900여건 차이였다. 반면 임대차법 시행일인 지난 7월 31일에는 전월세 매물이 6만1767건으로 지금보다 월등히 많았는데, 당시 전세 매물이 3만8427건에 달한 데 반해 월세 매물은 2만3340건으로 1만5000여건 적었다. 3개월 사이 전세와 월세 매물 비율이 크게 변한 것이다.

심지어 임대차 2법의 영향이 가장 컸던 지난 10월 1일에는 전세 매물이 8829건이고 월세 매물은 9155건이었다. 월세 매물이 전세 매물보다 더 많은 현상은 9~10월 중에 한동안 계속됐다.

수요와 공급이 완전히 어긋나면서 전셋값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심지어 전셋값이 매매가를 추월하는 일도 벌어졌다. 경기도 남양주 호평마을의 한 아파트는 지난달 초 전용면적 84㎡ 전세 매물(7층)이 3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그런데 같은 달 중순에는 같은 면적(3층) 매매 거래 역시 3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특히 이 지역 아파트들의 호가까지 감안하면 전세와 매매가 역전되는 현상마저 나타났다. 이처럼 로열층이나 동에 따라 가격 변수가 많지만, 전셋값이 매매가를 위협할 정도로 크게 올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매물에 관한 소식이 심심찮게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부동산 시장에서 최근까지 정상 상태로 받아들여졌던 경향이 크게 바뀌면서 실제 거래 경향 이상으로 심리가 악화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전세 실제 거래는 크게 줄지 않았다거나 전세의 월세화 수준이 미미하다는 기존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9일 “최근 전세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계약갱신청구권 때문이다, 임대차 3법 때문이다’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