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샀는데 온 건 헌옷가지”… 복불복 온라인 중고거래

입력 2020-11-10 04:02

20대 직장인 박모씨는 지난해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휴대전화를 구입했다가 낭패를 봤다. 30만원 넘는 돈을 주고 배송받은 택배 상자에는 냄새나는 옷가지만 잔뜩 들어 있었다. 박씨는 9일 “처음에는 헌옷을 완충재로 썼겠지 했다. 진짜 헌옷만 보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며 허탈해했다. 운송장 번호가 적힌 ‘인증샷’까지 받은 터라 사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박씨는 “2017년부터 중고거래를 100번 넘게 했는데 내가 속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경찰 신고 후 10개월 만에 범인을 잡은 박씨는 또 한 번 허탈한 상황을 마주했다. 사기꾼이 벌금형만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박씨는 “민사소송을 하지 않으면 돈도 돌려받을 수 없다고 한다. 돈도 꿀꺽하고, 얼마 되지 않는 벌금을 내거나 짧게 징역을 산 뒤 또 사기치면서 살지 않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인터넷 중고거래 시장 규모가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사기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구매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아이 엄마를 사칭하거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핑계를 대면서 비대면 거래를 유도하기도 한다. 안전결제를 가장한 피싱 사기도 적지 않다.

A씨는 지난 9월 당근마켓에서 ‘엄마’를 사칭한 사기범에게 속을 뻔했다. 시세보다 30만원가량 싸게 전자제품을 ‘급처’로 올린 판매자는 ‘○○맘’이라고 별명을 설정해 놓고 아기엄마 사진을 올려놓았다. 그러면서 아기 때문에 외출이 어려우니 안전결제를 유도하다 A씨가 꼬치꼬치 캐묻자 잠적했다. A씨는 “코로나19를 이유로 비대면 거래를 유도하는 사람이 많다”며 “구매자가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행 전자상거래 관련 법(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중고거래 플랫폼은 통신판매중개자로 분류돼 소비자 피해에 대한 직접 배상 책임이 없다. 이 때문에 소비자 사이에선 중고거래 플랫폼이 사기 피해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짜 제품 사기를 당했다”며 신고하니 ‘정품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서류를 첨부해 달라’는 답변을 받은 피해자도 있다.

한 중고거래 플랫폼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와도 그 사람의 거래를 막는 것 외에는 결국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며 “안전결제 장치를 만들어뒀는데도 이용자가 개인 계좌를 이용해 결제하면 어떻게 다 책임을 지느냐”고 하소연했다.

구매자들도 사기 판매자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등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사기 판매자의 이름과 전화번호, 계좌번호 등을 관련 커뮤니티에 공개한 20대 여성 신모씨는 “이렇게라도 해야 추가 피해를 방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가명을 사용하거나 전화·계좌번호를 자주 바꾸는 사기꾼들이 많아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중고거래 물품사기에 금전 지급정지 방안을 도입하는 등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 논의와 입법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