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파른 원·달러 환율 하락은 달러를 벌어들이는 국내 수출기업의 실적을 얼마나 깎아 먹을까? 어떤 물건을 같은 단가, 같은 규모로 해외에 내다 판다면 수익성은 환율이 낮아질수록 불리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 수출기업을 포함한 코스피 상장기업 순이익은 원화 강세 상황, 즉 원·달러 환율이 낮을 때 상승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지윤 대신증권 연구원은 9일자 보고서 ‘환율과 실적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서 “원·달러 환율과 코스피 분기 순이익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 흐름을 비교해 보면 환율이 하락했을 때 순이익 증가율이 개선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원화 강세를 보인 분기의 평균 수익률 상위 업종에는 경기 민감주로 분류되는 수출 업종이 포진한 것으로 분석됐다.
안현국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6일 ‘환율 내려도 실적 안 깨진다’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원화 강세가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악화시켜 이제 막 회복에 접어든 기업 실적이 둔화할 것이란 우려가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오히려 기업 이익 회복의 시그널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반대로 환율 상승이 수출기업 실적에 유리한 여건인 것도 아니었다. 안 연구원이 2008년 이후 기간을 분석한 결과 원·달러 환율이 오를 때 코스피 실적달성률(예상치 대비 실제 실적)은 하락했다. 그는 “다시 말하면 환율이 강세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기업 실적은 어닝 쇼크보다 서프라이즈가 많아진다는 뜻”이라고 해설했다.
전문가들은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달러 약세에 따른 원·달러 환율 하락이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추가 부양책 실시와 더불어 그린(친환경) 관련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재정수지 적자 확대 그리고 미국 자국 우선주의 정책 완화가 달러화 약세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원화 역시 강세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향후 기업 실적을 좌우하는 변수가 환율 동향보다 국내외 경기 흐름이라는 견해는 공통적이다. 김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가 양호해 한국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이라면 환율 하락으로 단가가 조금 상승했다고 살 제품을 안 사지는 않는다”며 “수출 실적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는 글로벌 경기 상황이지 환율 변동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 연구원은 “원화 강세는 기업에 당장 악영향으로 해석하기보다 가팔랐던 원화 약세가 정상화되는 현상”이라며 “세계 금융위기 이후 회복기였던 2009년, 대세 상승기였던 2017년처럼 2021년은 기업 실적 역시 정상화되는 해”라고 강조했다.
다만 환율이 시장 예상보다 급격하게 하락한다면 수출기업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김 연구원은 분기 평균 원·달러 환율이 분기 초 시장 예상치를 밑돈 경우 코스피 순이익이 전년 대비 감소하거나 예상치를 -10% 이상 하회할 확률이 44.4%로 높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