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2의 전략적 인내 없을 것…내년 7월 이후 협상 준비”

입력 2020-11-09 04:01

“제2의 전략적 인내는 없을 겁니다. 비핵화 협상은 양자 및 다자 협상을 병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정부도 ‘중재자’는 물론 ‘당사자’ 역할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고유환 통일연구원장은 8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 새 행정부가 외교안보 라인 인선과 대북 정책 검토를 마무리하는 대로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기는 내년 7월쯤으로 예상했다. 대북 제재 등 소극적 압박을 지속하며 북한의 변화를 기다렸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을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답습할 가능성은 낮다는 얘기다.

고 원장은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를 그 이유로 들었다. 미국이 전략적 인내를 내세우며 8년간 북한을 사실상 방치한 사이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해 워싱턴까지 타격 가능한 능력을 갖췄다.

지난달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선 규모와 성능이 향상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전격 공개하며 한·미 군 당국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갈수록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 능력 증강을 막기 위해서는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고 원장은 내다봤다. 다만 고 원장은 “바이든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비핵화 논의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고 원장은 북한이 미 권력교체기의 혼란을 틈타 자신의 ‘몸값’을 올리려 내년 SLBM 시험발사 등 무력시위에 나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미 수차례 핵 능력을 입증했기 때문에 무력시위 효용성이 낮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며 “바이든을 자극하지 않은 채 차분히 비핵화 협상을 준비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고 원장은 향후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양자(북·미) 및 4자(남·북·미·중), 6자(남·북·미·중·일·러)가 참여하는 협상이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2년간의 비핵화 협상은 3자(남·북·미) 틀 안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동맹과 다자주의를 중시하는 바이든은 중국과 일본 등 한반도 주변국들까지 끌어들여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라는 뜻이다. 고 원장은 “우리 정부도 전열을 재정비해 ‘중재자’는 물론 ‘당사자’로서의 역할까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 원장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우리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급격히 얼어붙은 남북 관계가 바이든 당선에 따라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새로운 협상 상대와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할 북한으로선 우군을 최대한 확보해 협상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열병식 기념사에서 이례적으로 “사랑하는 남녘 동포들”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일 수도 있다는 게 고 원장의 분석이다. 고 원장은 “북한이 우리 정부의 방역·보건 협력 제안을 수락하는 것으로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