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메이커 트럼프” “내 친구 문 대통령”…. 서로를 이렇게 불렀던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반도 협력 시대가 저물고 있다. 미국에서 ‘조 바이든 시대’가 임박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트럼프식 ‘톱 다운(top down·정상 간 담판)’ 접근에도 일대 변화가 올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리얼리티쇼 스타이자 부동산 사업가였던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냉철한 외교·안보 베테랑 조 바이든 미 민주당 대통령 당선인과 협력해야 한다. 카운터파트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사랑에 빠졌다(트럼프)”, “깡패(바이든)”로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그런 만큼 북·미 및 남·북·미 관계에서도 즉흥적인 만남 또는 결정이 아닌 치밀하고 탄탄한 로드맵과 전략이 수반돼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저무는 文·트럼프 ‘대북 브로맨스’
인권변호사 출신 문 대통령과 부동산 사업가이자 정치 아웃사이더인 트럼프 대통령은 삶의 궤적이 전혀 달랐다. 하지만 한·미, 북·미, 남북 문제에서만큼은 두 정상과 김 위원장이 ‘브로맨스(남자들의 우정)’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호흡이 맞았다.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선 트럼프 대통령에 “경의를 표한다” 등 표현으로 극찬해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님이야말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주인공, 한반도의 피스메이커”라고 극찬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문 대통령을 “내 친구”라고 불렀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연출한 가장 극적인 장면은 지난해 6월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과 3자 회동을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판문점 회동을 제안했고 김 위원장이 응하면서 드라마틱한 장면이 연출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지난해 ‘하노이 노딜’ 이후에도 이 같은 연출과 친서 교환을 통해 정상 간 신뢰는 여전하다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물론 두 정상 간에도 주한미군 유지와 방위비 분담 문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 견해차가 큰 사안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대북 문제에서만큼은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과감한 담판’에 뜻이 맞았다.
외교베테랑 바이든, 김정은은 “깡패”
바이든 당선인은 미 상원 외교위원장을 맡는 등 외교위원회에서 12년이나 활약하면서 외교·안보 문제는 가장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상원 법사위원장을 역임해 협상에도 매우 능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8년이나 한 만큼, 대북 문제에서도 트럼프식 ‘즉흥성’보다는 국무부를 중심으로 한 실무협상을 통해 결정을 내리는 ‘보텀 업(bottom up·상향식)’ 방식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 또 정권 교체에 따라 한반도 문제를 담당할 외교·안보 라인을 새로 꾸리는 데도 6개월가량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바이든 당선인은 김 위원장 개인에 대한 비판도 여러 차례 해왔다. 그는 지난달 마지막 대선 토론에서 김 위원장을 향해 “그는 깡패(thug)”라며 “그가 핵 능력을 끌어내리는 데 동의하고, 한반도가 핵무기 없는 구역이 돼야 한다는 데 동의해야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비핵화 협상의 원칙을 예외 없이 지키면서 상황이 완전히 무르익은 뒤에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 문제에서 종전선언을 통해 출구를 마련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최근 제안과는 상충한다. 북·미 협상이 트럼프 행정부에서처럼 과감히 나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국제사회에 다시 한번 촉구한 데 이어 10월 코리아소사이어티 연설에서도 “종전선언은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고, 어렵게 이룬 진전과 성과를 되돌릴 수 없다. 종전선언을 위해 한·미 양국이 협력하길 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문 대통령과 개인적 인연도 거의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2년 11월 대선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자격으로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의 재선을 축하한다는 축전을 보낸 바 있다.
하지만 그해 말 한국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2017년 1월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문 대통령과 바이든 당선인의 인연은 엇갈렸다. 공통점을 찾는다면 변호사 출신이라는 점, 양당 체제 속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민주당 소속이라는 점이다.
한반도 평화에 공감, 협력 여지는 많다
물론 다른 분석도 있다. 바이든 당선인이 동맹을 중시하고 다자주의 질서를 존중하는 만큼,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보다 여러 방면에서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바이든 당선인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의 뜻을 밝혀왔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뿌리가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인만큼 남·북·미 관계의 큰 틀은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바이든 당선인의 당선이 유력시되던 지난 6일 제주포럼 기조연설에서 “한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같은 날 열린 미·일 안보실장과의 화상회의에서 “미국의 대선이 종료된 만큼, 북·미 대화 노력이 조기에 재개되어야 한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한반도 기회와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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