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성역 없는 수사의 예외?

입력 2020-11-09 04:04

법 집행의 엄정성과 공정성을 말할 때 항상 거론되는 것이 ‘성역 없는 수사’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할 때 말했던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성역 없는 수사가 관철된 사례는 근래에도 상당히 많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과 관련한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 그리고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압수수색 및 구속도 그렇다.

그런데 최근 월성원전 1호기와 관련된 검찰 수사에 대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치 수사이자 검찰권 남용”이라고 강력히 비판함에 따라 여전히 수사의 성역이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 대표는 “에너지 전환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중요 정책인데 이에 대한 사법적 수사는 이제 검찰이 정부 정책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수사의 성역인가? 문재인정부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약이던 4대강 정책에 대해 수사했던 것은 무엇인가? 역시 죽은 권력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4대강 정책은 잘못된 것이기에 수사가 필요했고, 탈원전 정책은 옳은 정책이기 때문에 수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 그 판단은 누가 내리며, 감사원 감사를 통해 확인된 불법과 비리를 그대로 묵인하는 것이 옳다는 것인가? 이렇게 수사의 성역을 요구하는 정치는 민주정치일 수 없다.

이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 있다. 그동안 수사의 성역을 만드는 일이 꾸준히 진행됐고, 정권의 힘에 의해 법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왜곡되고 훼손된 사례들은 적지 않다. 널리 알려진 것만 해도 정부의 친노조 성향 때문에 발생했던 노조원들의 유성기업 상무 폭행 사건, 정부 비판 대자보에 대한 경찰 수사와 유죄 판결, 최근의 납득하기 어려운 광화문집회의 사실상 금지에 이르기까지 정부 입김이 사법작용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정치가 법치를 흔들고 덮어버리는 상황에서는 문 대통령이 약속했던 공정한 대한민국이 가능할 수 없다. 단순히 불법이 존재한다는 것보다 정치권력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희망조차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이미 오랜 독재의 경험을 통해 우리 국민들이 잘 알고 있는 과거, 즉 정치권력이 법치를 무시하고 조롱하고 엎어버리던 시절의 그 불법국가로 돌아가자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치가 붕괴할 경우에는 민주주의도 함께 무너진다는 것은 인류 역사의 교훈이다. 민주주의가 완벽하지 않으며 다수의 의사에만 의지할 경우에는 중우정치(衆愚政治)라는 타락한 형태가 출현한다는 점은 이미 민주정치의 초창기인 고대 그리스에서도 확인됐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를 통해 검증된 인권, 권력분립, 의회제도, 사법부 독립, 복수정당제 등의 근본 가치를 중심으로 다수의 독재, 다수의 횡포를 견제할 수 있는 엄밀한 기준이 정립되고 관철돼야 한다. 그것이 바로 법치이며, 법치를 통해 민주정치가 타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런데 다수의 의사, 다수의 지지만을 앞세우면 민주주의 자체가 중우정치로, 남미식 포퓰리즘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도덕적으로 선명한 나만은, 우리는 예외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미 독재로의 지름길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무리 선한 의도에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독선은 독재가 될 수밖에 없다.

프랑스 대혁명 직후 자코뱅의 지도자였던 로베스피에르는 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되기도 하지만, 수많은 사람을 단두대로 보내면서 공포정치를 통해 독선적인 정치권력자로 군림하다가 결국 자신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밖에도 민주주의의 신봉자이면서 독재자로 군림했던 사례는 많다. 문재인정부와 민주당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수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이를 위한 성역 없는 수사를 말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것만이 법치를 살리고, 민주주의를 유지하며, 국민을 주권자로 대우하는 것이다.

장영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