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됨에 따라 1년 반 임기가 남은 우리 정부 내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복원을 위한 한·미 공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실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면 올가을에 추진하려 했던 북·미 고위급회담에 이은 정상회담과 함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신속히 복원되기를 기대했음 직하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 출범이 오히려 북핵 해결의 실현 가능성을 더 높인다는 면에서 정부가 설득력 있는 외교를 펼쳐 평화 촉진자 역할을 잘한다면 우리에게 큰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세 번의 트럼프·김정은 만남을 회고해 보면 트럼프는 북핵 해결보다 흥행에 더 관심을 두고 있고 최고 참모들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실현 가능성 높은 합의를 방해함으로써 오히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만 강화시켰다. 바이든이 대선 토론에서 트럼프가 ‘폭력배’ 김정은을 고립에서 탈출시켜 국제무대의 지도자 반열에 오르게 해주었을 뿐 북한 미사일은 하나도 폐기시키지 못했다고 비판한 것이 거의 사실에 부합한다.
바이든 당선에 대한 우려는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바이든이 부통령이었던 오바마 행정부 8년간 북한과 대화다운 대화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전략적 인내’ 정책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런데 이는 동맹국을 존중하는 오바마 행정부가 이명박·박근혜정부의 대북 강경책 공조 요구에 호응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바이든 행정부는 문재인정부의 평화 프로세스 복구 입장을 존중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결국 우리 하기에 달려 있다고 여겨진다. 또 바이든이 트럼프와 김정은의 정상외교를 비판해 왔기 때문에 대북강경론자로 오해받는 데 있다. 사실 바이든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가했듯이 내내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지지했는데 정적인 트럼프가 성과 없이 이벤트성 정상외교를 하니 비판했던 것뿐이다.
바이든이 부통령으로서 적성국 쿠바와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이란과의 핵 합의를 주도한 것은 북한과도 핵 합의를 이루면서 관계도 정상화할 충분한 용의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란과의 핵 합의는 비확산이라는 국익을 위해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불량국과도 실현 가능성이 높은 상호주의에 입각한 단계적 합의를 열린 마음으로 추진할 수 있음을 나타내준다. 김정은은 김여정의 7월 대미 담화를 통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고 북한의 안보를 고려한 상호위협 감소 용의를 열어놓아야 북·미 고위급 회담에 응하겠다고 했다. 이에 바이든은 대북 인도주의 지원을 추진하겠다고 하고, 단번에 비핵화를 달성하는 빅딜보다 상호주의적 단계 합의를 지지한다. 따라서 검증을 강화하고 약속 불이행 시 상대방은 선의의 조치를 철회하는 스냅백 장치를 적용해 핵 동결 및 핵능력 감축을 거쳐 핵 폐기로 이어지는 2단계 정도의 북핵 폐기를 추진하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정부는 북·미 양측에 보다 능동적으로 설득력 있는 외교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먼저 북한이 도발하면 북·미 대화 기회는 사라지고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임을 여러 경로로 설득·압박해 이를 억지해야 한다. 동시에 미국에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독재자에 대한 ‘과감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천명했지만 당선자 시절과 취임 후 두 달간 북한에 관심을 주지 않자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감행한 것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아울러 바이든이 트럼프·김정은 간 6·12 싱가포르 합의를 준수한다고 선언하면 미국의 국제적 신뢰를 증진하고 북한을 관리하면서 비핵화 협상도 진척시킬 수 있다고 설득해야 한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