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선거와 텍스트 해석

입력 2020-11-06 04:03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투표가 끝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20년 전에도 일어났었다. 그때는 한 달 넘는 기간 재검표와 법정 공방이 계속되다가 결국 12월 12일 대법원이 개입해 상황이 종료됐다. 공화당 성향의 판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대법원이 수작업 재검표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고, 그 후 민주당 앨 고어 후보는 패배를 인정했고, 공화당 조지 W 부시가 대통령 당선인으로 확정됐다.

선거 및 개표 과정과 그 결과를 판단하는 절차를 살펴보면 선거는 일종의 텍스트 해석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든다. 선거·개표 과정은 한 저자가 책을 저술하고, 독자가 그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선거의 경우 저자는 각 투표자이고 저술은 투표용지이며 독자는 개표하는 기관이다.

저자가 자기의 생각을 담아 책을 쓰는 것처럼 투표 행위는 유권자가 자신의 의도를 투표용지에 텍스트로 표시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투표용지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길이의 책이다. 그렇지만 그 중요성은 세계사 흐름을 바꿀 만큼 막대하다. 투표권자가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기표하는 것은, 작가가 자신의 사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책을 쓰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책과 같이 투표용지도 읽히고 해석되기 위해 작성됐다. 기표됐지만 개표되지 않은 투표용지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종이 한 조각이어도 계수가 됐을 때 그 효과는 아주 크다. 개표는 투표용지라는 텍스트를 해석하는 공식 과정이다. 일반적인 책과 달리 아무나 투표용지의 독자가 될 수 없다. 공식 기관이 개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투표용지의 해석은 너무 간단해 구태여 해석이라고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도장을 찍는 것이나 펀치 구멍을 뚫는 것으로 표기된 텍스트를 읽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을까 생각하지만,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경우 그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플로리다의 어떤 선거구에서는 투표용지에 펀치를 눌러서 기표하도록 돼 있었는데, 종잇조각이 완전히 떨어져나가지 않고 투표용지에 매달려 있는 경우 이것을 유효표로 볼 것인가, 무효표로 볼 것인가에 대해 열띤 토론이 있었다.

선거 결과를 집계해 보고하는 시한을 어떻게 정하느냐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된다. 올해 개표에서도 이 문제가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선거의 정신을 생각하면 끝까지 정확하게 계수하는 게 맞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시한을 정해둘 수밖에 없다.

또한 상식적으로는 한 국가의 대통령이라면 가장 많은 유권자의 표를 얻은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미국은 특별한 선거인단 제도가 있어 전체 유효표에서는 앞서도 선거인단 수에서 뒤지면 당선되지 못한다. 이런 특별한 선거제도가 불합리하다거나 비민주적이라고 비판을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선거제도는 미국의 특별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국민 합의에 의해 정해진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같이 선거라는 제도는 간단하게 생각하면 텍스트 작성과 해석이라는 단순한 일을 처리하기 위한 장치다. 그렇지만 선거의 경우는 텍스트를 어떻게 작성하고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 되기 때문에 매우 복잡하고 정밀한 장치가 마련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빙의 표 차이가 나는 경우 많은 문제가 생긴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통해 텍스트 해석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기독교인의 경우 성서라는 텍스트의 해석을 위해 얼마나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지 반성하게 된다.

이대성 연세대 교목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