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증시, ‘블루웨이브’ 무산에 증세 부담 던 IT 공룡株 급등

입력 2020-11-06 04:05
뉴욕증권거래소 직원들이 4일(현지시간) 미 대선 최종 결과를 기다리며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뉴욕 증시는 대형 IT주를 중심으로 일제히 상승했다. 연합뉴스

역전에 재역전의 드라마가 펼쳐진 4일(현지시간) 뉴욕 증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소송 제기 등 불복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결국 무난히 당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상승했다. 우량주 종목을 반영하는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1.34% 오르고 대형주 위주의 S&P500지수는 2.20% 상승했다. 지난 6월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이어 개장된 한국 증시에서 코스피지수는 56.47포인트(2.4%) 오른 2413.79에 장을 마쳤다. 코스피가 종가 기준 2400선을 넘은 건 지난달 13일(2403.15) 이후 20여일 만이다. 코스닥지수는 17.83포인트(2.16%) 상승한 844.80에 마감했다.

이날 증시는 미국 선거 결과가 경제정책을 어떻게 좌우할지를 보여줬다. 특히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이 4~8% 이상 오르는 등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가 3.85%나 뛴 점이 눈에 띈다. 공화당이 상원의 과반 의석을 지킬 것이 확실시되면서 민주당이 백악관-상하원을 싹쓸이하는 ‘블루웨이브’가 무산된 점이 반영됐다.


대형 기술주 랠리는 민주당이 공언해 온 2조2000억 달러+α의 경기부양책 추진에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법인세율 7% 포인트 인상 등 증세 부담이 덜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코로나19 2차 충격을 막기 위해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완화적인 통화정책과 채권 매입이 더욱 활발해지면서 국채 수익률이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가세했다. 기술 공룡 기업들 입장에서는 세금 부담 완화에다 자금조달 비용까지 아낄 수 있어 금상첨화다.

이날 10년 만기 재무부 채권 수익률은 연 0.76%로 전날보다 0.14% 포인트나 떨어졌다. 채권 수익률이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은 투자자들의 채권 수요가 크게 늘었다는 뜻으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블루웨이브 무산으로 대규모 부양책에 어려움이 예상되자 저금리 장기화와 채권값 상승을 예상해 재무부 채권에 베팅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트럼프의 우편투표 소송으로 당선인 확정이 늦어질 것을 우려해 안전자산 포트폴리오 확보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술주 강세가 지난 9월 이후 경기 회복과 물가 상승을 예상해 경기순환주, 가치주, 소형주 등의 매입 추세를 보였던 이른바 ‘리플레이션 트레이드’를 되돌리는 신호탄이 될지도 관심거리다.

테슬라, 니콜라, 블룸에너지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 주가가 이날 하락세를 보인 것은 바이든의 2조 달러 규모 친환경 정책 패키지 추진이 여의치 않을 것이란 회의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5일 국내 증시에서는 바이오, 풍력, 2차전지 관련 주가가 강세로 돌아서는 등 친환경 정책 수혜 기대감을 반영해 대조를 보였다.

블루웨이브가 물건너갔다고 해서 부양책 추진에 부정적으로만 작용한다고 볼 수는 없다. 백악관과 의회 간 힘의 균형과 견제장치가 적절히 작동한다면 상호 협력을 통해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등장은 달러 약세로 신흥국 경제가 새로운 기회를 맞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바이든 집권은 세계 경제 불안요인 완화를 의미하고, 이에 따라 달러 약세가 가속화할 것으로 보여 이머징마켓 투자 매력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 대비 9.5원 급락한 1128.2원에 마감해 지난달 27일(1125.5원) 이후 다시 1120원대로 내려왔다.

미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릭 리더 채권부문 투자최고책임자는 블룸버그통신에 “저금리 상황에다 온건 성향의 바이든 등장은 신흥시장에 유리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우선주의는 유지되겠지만 트럼프와 달리 중국과의 불필요한 마찰이 줄어 예측 가능성이 커질 것이란 관측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바이든 시대가 현실화되면 한국은 세계 교역량에 탄력적인데다 한국-중국-미국으로 이어지는 교역 가치 사슬이 회복될 수 있어 한국 경제가 이머징 국가 가운데 가장 긍정적인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조민아 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