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배역이 젊은 임산부… 하루 서너끼 먹고 몸 불렸죠”

입력 2020-11-06 04:03
12일 개봉하는 영화 ‘애비규환’에서 젊은 임산부 토일 역을 연기한 배우 정수정. 에이치앤드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에프엑스 멤버 겸 배우 정수정(크리스탈)이 스크린 데뷔작으로 선택한 배역은 임산부였다. 12일 개봉하는 영화 ‘애비규환’에서 그는 똑 부러진 5개월 차 임산부 토일 역으로 출연한다. 계기는 간단했다. 공감돼서다. 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정수정은 “어리고 당찬 토일이는 요즘 여성을 대변하는 느낌도 있고 매력적”이라며 “영화는 남녀노소 세대를 가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이야기가 이어진다”고 말했다.

‘애비규환’은 재혼가정에서 자란 토일이 과외로 만난 고등학생 호훈(신재휘)과 사랑에 빠져 임신한 후 친아빠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한국 사회의 가족에 대한 선입견이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당초 신인 최하나 감독의 첫 장편이자 정수정의 첫 영화인 ‘애비규환’은 기대와 동시에 우려도 쏠렸다. 하지만 최근 시사회에서 공개된 작품은 짜임새 있는 줄거리와 호연으로 호평받았다. 영화는 앞서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에도 초청됐었다. 정수정은 “부산국제영화제 관객 질문들이 하나같이 신선했다. 그때 ‘재밌게 보셨구나’라는 걸 알았다”고 웃었다.

이날 만난 정수정은 도회적인 이미지와 다르게 소탈했다. 영화 속 토일이도 비슷하다. 민낯에 머리를 질끈 묶은 토일은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위풍당당하게 거리를 누빈다. 하루 3~4끼를 먹으며 일부러 체중을 늘렸다는 정수정은 “토일이가 최대한 여성스럽지 않게 입는 걸로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개중에 감독님과 제 의상들도 있다”면서 “토일이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연기도 더 편했다”고 설명했다.

극중 토일이가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성숙해가는 모습은 그룹 활동을 하던 예전의 자신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다만 무더운 여름에 무거운 특수 소품을 배에 차고 다니는 것은 만만치않게 힘들었다. 그는 “다리를 꼬기도 어렵고 행동에 제약이 많이 따르더라. 임산부 고충을 간접 경험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음식·영화·음악 취향이 비슷한 3살 터울의 최 감독과도 호흡이 좋았다. 특히 엄마 역 장혜진과는 “선배님이자 언니, 엄마”로 부를 만큼 끈끈한 사이가 됐다. 작품 밖에서는 절친한 것으로 잘 알려진 언니 제시카(소녀시대 전 멤버)에게서 힘을 얻었다. 정수정은 “깊이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언니를 비롯해 가족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2009년 데뷔한 정수정은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하백의 신부’ ‘플레이어’ 등 브라운관에서 배우 활동을 꾸준히 병행했다. 아이돌 출신 연기자에 으레 따라붙는 연기력 논란 한번 없었다. 독특한 건 사기꾼 집단 멤버(‘플레이어’)·군인(‘써치’) 등 다양한 직업군을 연기했다는 점이다. 정수정은 “나는 새로움을 갈구하는 사람이더라”며 “연기는 ‘날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어렵지만 여러 삶을 체험할 수 있어서 정말 매력적”이라고 했다.

정수정의 가수 활동을 기대하는 팬들도 많다. 에프엑스가 쌓아 올린 성과들이 적지 않아서다. “배우는 인간 정수정의 한 부분을 키워나가는 과정”이라는 그는 “크리스탈의 모습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도 보답할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매 순간 열심히 사는 게 꿈이에요.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믿음직스러운 사람·배우·가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