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다. ‘득템’의 기회가 활짝 열렸다. 10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한국은 할인 중’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미국처럼 ‘블랙프라이데이’로 통칭하지는 않지만 어지간한 유통·이커머스 기업들부터 동네 마트나 시장까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대규모 할인 행사를 펼치는 시기다.
오늘도 누군가는 득템에 성공했다. 득템용 단골 상품인 에어팟은 ‘핫딜’로 뜰 때마다 1분도 안 돼 전부 팔려나간다. 도대체 성공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누군가는 득의양양하게 소셜미디어에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지난달 31일 이마트가 40% 할인된 가격에 내놓은 레드 킹크랩 15t은 오픈하자마자 일찌감치 품절됐다. 지난해 이마트에서 월평균 판매된 물량의 4배에 이르는 킹크랩이 하루 만에 팔려나갔다. 어렵사리 킹크랩을 산 사람들은 식탁에 마주 앉아 이런 말을 주고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완전 득템했네.”
득템에 성공하지 못하면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 영영 못 구하게 된 것도 아니고,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닐지라도 그렇다. 득템하지 못한 것을 ‘실패’로 간주하면 짧게나마 반응이 격해진다. 길가에 떨어진 1만원짜리 지폐를 보고 빠르게 달려가 집어 들려는 순간 바람에 날아가 다른 사람 발치에 홀랑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것과 비슷한 감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원래 내 것이 아니었는데도 내 것을 빼앗긴 것 마냥 아까운 마음과 화가 나는 마음이 울컥 치민다. 득템의 묘미는 하지만 여기에 있다. 성공담을 쓰기가 쉽지 않다는 것.
득템의 기회 앞에 줄을 서기까지도 쉬운 일은 아니다. 득템의 기회를 파악하는 정보력, 득템 기회가 열리는 때와 장소로 기민하게 움직이는 행동력, 망설임 없이 빠른 손놀림으로 결제 화면을 누르는 결단력이 동반돼야 한다. 득템은 ‘운빨’의 측면이 크지만 노력하지 않고서는 운 또한 따라주지 않는 것을 깨닫게 한다.
득템으로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어렵게 득템한 것’이라는 스펙을 갖게 되면 중고시장에서 몸값이 오른다. 이렇게 되면 득템은 두근거리는 쇼핑에서 영악한 벌이 수단으로 변질된다. 시장 창출 측면에서 보는 이도 있고, 얌체 같은 행태라는 비판도 크다.
득템은 공분을 일으키기도 한다. 과열 양상이 빚어지면서 공정성 시비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지난여름 ‘스타벅스 프리퀀시 이벤트’가 그랬다. 여행용 가방인 레디백을 득템하기 위해 누군가 커피 300잔을 버리면서 충격을 줬다. 레디백 득템의 일념으로 애써 만든 음식을 버렸다는 비윤리적인 행태와 레디백을 한 사람이 독식할 수 있었던 구조적 문제가 맞물리면서 공분이 일었다. 스타벅스는 하루에 한 매장에서 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레디백 수를 제한하는 것으로 교통정리를 해야 했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득템’은 사실 게임 문화에서 만들어진 단어다. ‘게임 아이템을 얻는 것’(得+템)이라는 신조어가 어느새 쇼핑을 대체하는 표현이 됐다. 그렇다고 모든 구매가 득템은 아니다. 어떤 구매는 득템에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구매보다 득템을 선호한다.
왜 구매보다 득템을 선호하는가. ‘다시는 이 가격에 살 수 없다’는 불안이 주된 이유가 된다. 적정 가격에 대한 신뢰가 약하기 때문이다. ‘남들은 얻지 못한 걸 나는 갖고 있다’는 데서 오는 특별한 기분도 득템의 매력이다. 여기에 이커머스 시장의 치열한 경쟁이 득템식 구매를 계속해서 부추긴다. 득템이 소비의 풍토가 된 것이다. 당분간 국내 유통 시장은 ‘득템의 경제학’을 반영해주는 주요 사례가 될 것 같다.
문수정 산업부 차장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