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어쩔 수 없는 도전, 코로나 시대의 아트페어

입력 2020-11-06 04:02

무슨 테스트를 해도 나는 내향형의 사람이라고 알려준다. 체력도 좋은 편이 아니라서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고, 같은 식당만 다니며, 굳이 모험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이런 내가 본의 아니게 용감할 때가 있다. 가끔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어요?”라는 질문 앞에서 멈칫한다. 생각해 보면 나의 도전들은 용기라기보다 ‘어쩔 수 없어서’였던 적이 많기 때문이다.

대학생일 때는 전공 수업이 재미가 없고 잘 못하겠어서 고생하다가 (어쩔 수 없이) 다른 진로를 모색했다. 대단한 포부와 높은 목표가 있어서라기보다 세상에 나에게 맞는 회사가 없는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퇴사를 했고, 그렇다고 마냥 놀 수는 없어서 방황의 파도에 이리저리 밀려다니다가 (어쩔 수 없이) 창업을 하게 됐다. 몸과 마음의 건강이 다 무너져버렸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동호회에 가입해 모르는 사람들을 따라 먼 지역까지 등산을 다니기도 했다. 살다 보면 꽤 힘든 상황이 오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일들이 ‘용기’로 평가받은 경험은 결과적으로 나에게 약이 된 것 같다.

올해도 코로나19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도전을 하게 됐다. 매년 한 번씩 수백 평의 넓은 공간을 빌려 하얀 가벽을 세우고 작품들을 걸어놓았던 아트페어를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문화예술계 행사들이 대부분 취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큰 비용을 들여 아트페어를 준비해도 될까, 큰 노력과 비용이 고스란히 손해로 돌아오면 나를 비롯해 함께했던 예술가들이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온라인&작품창고’라는 형식을 생각했다.

미술계에는 온라인 전시가 코로나 시대의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쏟아져 나오고, 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온라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또한 입증되고 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작품을 실제 보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트페어는 관람을 넘어 작품을 팔아야 하는 행사인데 구매자 입장에서 이미지만 보고 수백만원짜리 작품을 사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온라인 전시와 별도로 (어쩔 수 없이) 임시 창고를 마련해 일단 모든 작품을 한곳에 모아 놓기로 했다. 혹시 직접 보고 구매를 결정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작품을 꺼내서 보여주자고 생각한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까지 대비해 작품창고 입장은 시간당 10명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이렇게 대비하면 적어도 행사 자체를 취소하지는 않아도 될 테니까.

물론 이런 방식으로 작품이 예년만큼 팔릴 리는 없을 것이다. 평소 관람객이 2500명 내외로 오던 오프라인 행사인데, 작품창고에는 10분의 1 정도밖에 받을 수 없게 됐으니 말이다. 온라인으로 회원가입을 해서 작품을 보고, 실제로 보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시간을 예약해서 창고로 가야 하니 관람객 입장에서도 매우 번거로워졌다. 누군가는 이렇게까지 신진 예술가들의 미술 작품을 사야 하나 싶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내놓은 이 절충안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도 있다. 미술 작품을 전시 없이 모아만 놓고 판매한다고 하니 신선하다는 것이다. 많은 예술가가 참여 의사를 밝혔고, 재미있는 실험이라며 반기기도 했다. 새로운 방식이 기대된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오는 고객도 있다. 작품 구매를 약속하고 일정액을 먼저 결제하는 ‘뉴컬렉터’ 참여자도 작년만큼은 모집이 됐다.

창업하고 10년 만에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작품을 팔고, 작품창고에서 고객을 만나는 (어쩔 수 없는) 도전을 코로나19 ‘때문에’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참을 열심히 준비하다 보니 코로나 ‘덕분에’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됐다는 생각도 든다. 이전의 몇몇 경험들처럼 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결과적으로 용기와 도전으로 남기를, 떨리는 마음으로 빌어본다. 실험은 과연 어떻게 될까, 아트페어는 내일부터 시작이다.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