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한 청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가 사는 지역은 매우 더워 해가 진 뒤에나 일을 할 수 있는데, 그나마도 일거리 자체가 부족해 사람들이 갈수록 게을러진다고 한탄했다. 지나치게 느긋한 고향의 문제를 꼬집는 그의 말에, 나는 별 생각 없이 우리나라는 반대로 과로사회라 피로도가 너무 심하고 여유가 없어 사람들이 병들어 간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래도 거긴 여기처럼 아이들이 목이 탄다고 정수 안 된 물을 마셨다가 줄줄이 죽어가지는 않잖아요.”
불과 몇 십 년 전의 우리도 역사의 부침 속에 매우 궁핍하고 힘든 시기를 겪었다. 그 시기를 생생하게 살아온 나의 할머니는 아직도 개수대 물을 재활용하며, 낡디 낡아 더 이상 고치기도 어려운 물건들을 마치 함께 세월을 견뎌온 전우인 양 대하며 불편함을 참고 쓴다. 그런 모습이 안타까워 새것을 사드리려 해도, 상상조차 어려울 만큼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기를 기억하는 할머니 고집은 쉽게 꺾이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십수 년 사이에 너무도 달라져서 할머니의 나라와 손녀의 나라가 전혀 다른 곳 같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가난과 질병의 모습이다.
내가 투덜거리는 많은 것이 기아와 전쟁을 겪은 윗세대에겐 배부르고 철없는 소리인 것처럼, 당장의 먹을 것도 없이 병들고 소외돼 극한에 몰린 이들에게 재택근무나 마스크의 불편함이란 우주만큼이나 동떨어진 얘기일 테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를 끌고 가는 것은 추운 겨울바람 아래에서도 땅속 깊숙이 움트는 싹 같은 끈질긴 희망과 노력이지 않을까. 여러 의미로 몸과 마음이 서늘한 요즘이지만, 최선을 다해 일상을 견디는 우리의 노력들이 모여 머지않아 따스한 기운을 불러왔으면 좋겠다. 그 와중에 나보다 취약하고 어려운 이웃을 한 번 돌아보는 여유가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배승민 의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