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는 어떻게 美사회를 갈라놓았나

입력 2020-11-05 18:07
‘엘리트 세습’은 공정의 척도로 여겨졌던 능력주의가 미국 사회를 어떻게 분화시켜왔는지 다양한 통계와 자료를 들어 설명한다. 저자인 대니얼 마코비츠 예일대 로스쿨 교수는 능력주의의 수혜를 입은 엘리트들이 새로운 귀족으로 부상하면서 미국 사회가 계급사회로 변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법조계, IT, 금융계에 근무하는 엘리트의 삶을 통해 능력주의의 수혜를 입은 엘리트 자신도 능력주의의 피해자가 됐다고 지적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제42대, 제43대 대통령인 빌 클린턴, 조지 부시는 1946년생으로 한 달 보름의 시차를 두고 태어났다. 둘은 미국에서 ‘대압축 시대(Great Compression)’라고 부르는 시기에 성장했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당시는 미국에서 소득 격차가 크지 않던 때였다.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외조부모 손에 자랐던 유복자 클린턴이나 상원의원이자 은행 출자자를 할아버지로 둔 장남 부시의 삶의 궤적은 큰 차이가 없었다.

예일대 로스쿨을 나온 클린턴은 거기서 만난 부유한 집안 출신의 힐러리 로댐과 결혼한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부시는 동네에서 만난 중산층 출신의 사서 로라를 배우자로 맞이한다. 적어도 두 사람에게 계층은 교육이나 결혼에서 결정적인 변수가 되지 않았던 셈이다. 책 ‘엘리트 세습’은 둘의 사례를 제시한 후 “20세기 중반에 부유층과 나머지 사람들은 부유층의 재산이 (약간) 더 많다는 것 이외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능력주의’가 만든 사회적 단층

‘엘리트 세습’은 경제적으로 통합됐던 20세기 중반 미국과 달리 오늘날 미국은 “계급 사회로 돌변하기 일보 직전”이라고 평가한다. ‘신 카스트제도’ ‘신흥 귀족제’라 일컫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양극화의 원흉으로 능력과 노력으로 평가받는 ‘능력주의’를 꼽는다.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대니얼 마코비츠는 지난해 미국에서 ‘능력주의의 함정’(The Meritocracy Trap)이라는 원제로 출간된 이 책에서 공정하게만 보이는 능력주의가 미국을 어떻게 갈라놓았는지 수많은 자료를 들어 입증한다.

저자는 미국 사회의 극심한 경제적 격차는 ‘중산층 공동화’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소득 하위층과 중산층의 격차가 좁혀진 반면 상위층과 중산층의 격차는 더 심하게 벌어졌음을 통계를 통해 보여준다. 특히 소득이 많을수록 격차는 더 벌어진다. “사다리를 올라갈수록 사다리 계단 사이 간격은 더 넓어”지는 것이다. 단적으로 1964년 중위소득은 하위 5분위 평균소득보다 4배 정도 높았으나 50년 뒤에는 3배 정도로 격차가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상위 1%의 평균 소득은 중위소득의 13배에서 23배로 늘었다. 또 소득 하위 90%의 지니계수(0~1 사이로 숫자가 높을수록 불평등)는 변동이 없었으나 소득 상위 5%의 지니 계수가 0.33에서 0.5로 치솟았다.

20세기 중반까지 ‘풍요로운 사회’의 주역이었던 미국 중산층이 몰락한 것은 일류 교육과 근면성으로 무장한 신흥 엘리트가 등장한 이후부터다. 출생과 동시에 부와 지위를 물려받았던 20세기 초반 엘리트들과 달리 이들은 능력으로 자신의 앞길을 개척했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같은 명문대가 동문·기부자 자녀 입학 비율을 줄인 대신 성적에 따른 입학생 비율을 늘린 것과도 맞물린다. 경쟁을 통해 일류대 졸업장을 취한 이들은 로스쿨이나 경영대학원 같은 대학원으로 다시 진학해 이전 세대와 다른 압도적 지식을 축적한다.

이들이 사회로 나오며 미국 노동 시장은 변한다. 컴퓨터와 로봇으로 대표되는 신기술과 고급 인력이 결합하면서 생산의 중추가 중간 숙련 노동자에서 초고도 숙련 노동자로 이동한다. 이에 따라 중간 숙련도를 갖춘 노동자는 로봇 설계와 프로그래밍을 담당하는 초고도 숙련자에게, 은행 대출담당자나 주식 중개인은 최첨단 금융 기법을 습득한 월가의 엘리트 금융인 등에게 밀려난다. 근면성을 미덕으로 간주하지 않던 세습 엘리트와 달리 ‘일과 삶의 균형’을 무시할 정도로 일에 몰두하는 것 역시 신흥 엘리트의 특징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타고난 유한계급이 주도한 사회에서 일하는 부유층이 주도하는 사회”로 이동했다고 표현한다.

능력으로 쌓은 부는 비슷한 집단끼리 결혼하는 ‘선택혼(Assortative mating)’과 자녀 교육을 통해 유지·계승된다. “능력주의에서는 귀족제도에서 태생이 담당하던 역할을 교육이 대체했으며 상위 근로자의 노동이 세습 토지가 담당하던 역할을 대체했을 뿐이다.”


‘능력주의’의 배신

능력에 따라 부와 지위를 얻는 것은 그 자체로 보면 별 문제 없어 보인다. 특히 과거 세습을 통해 부와 지위를 유지했던 귀족들과 비교하면 ‘능력주의’는 다음 문장처럼 더 없이 공정해 보인다. “귀족적인 불평등이 소모적이고 부당했던 데 반해, 능력에 따른 불평등은 효율적이고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능력주의는 불평등 심화의 해결책이 아니라 근원”이라고 답한다. 먼저 저자는 능력주의가 유발하는 불평등으로 인해 능력주의가 생각만큼 생산적이지 않다고 본다. “엘리트 근로자의 진짜 생산물은 능력주의에 따른 불평등과 능력주의의 중간 숙련도급 중산층에 대한 억압이라는 비용으로 상쇄되기 마련이다.” 소득 격차로 인한 사회 통합 가능성이 줄고 서로를 적대하게 되는 것 역시 사회가 치르고 있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다.

능력주의에 따른 수혜를 입은 신흥 엘리트 자신도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유치원부터 시작되는 극심한 경쟁은 우울증, 약물중독, 자살률 증가 같은 폐해를 낳고 있다. 학교에서 살아남아 사회로 나온 후에도 경쟁 강도는 줄지 않는다. 사회에서 마주치는 이들 모두 경쟁을 뚫고 남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병원 분만실에서 계약을 마무리하거나 문서 초안을 작성하는 변호사의 이야기가 충격적일 정도로 흔하고, 연간 260일이 맑은 날인 실리콘밸리 팰로앨토에서 햇빛을 보지 못해 비타민D 결핍 진단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들의 업무 강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저자는 “중산층과 엘리트는 서로 다른 고통을 겪지만 같은 압제자 아래에서 고통 받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저자의 해법은 무엇일까. 능력주의를 유지·강화하고 있는 교육과 일자리의 문턱을 낮추도록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다. 우선 다양한 계층의 학생들이 입학할 수 있도록 명문 사립학교와 대학의 세금 면제 혜택과 공공 보조금 정책을 손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중산층 노동력을 전면과 주변부에 배치하도록 중산층 노동으로 생산을 재조정하는 것을 정책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샌프란시스코의 보편적 건강보험 계획이 의사보다 임상간호사의 역할에 중점을 두는 것, 워싱턴주에서 변호사보다 숙련도급 법무사에게 일상적인 법률서비스를 제공토록 하는 실험이 사례로 제시됐다.

저자가 20년에 걸쳐 준비한 책인 만큼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자료가 풍부하다. 책에는 담겨 있지 않지만 PDF 파일로 볼 수 있는 미주(尾註)의 분량만 221페이지에 달한다. 그만큼 오늘날 미국 사회의 현주소를 세세하게 들여다보면서도 전체적인 시각에서 조감하고 있는 책이다. 국내 출간 시점이 미국 대선 시즌인 만큼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과 그 인기의 주요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거리를 던진다. 무엇보다 남다른 교육열을 보이고 있는 국내 상황과 오버랩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실제 책에선 극심한 교육 경쟁의 사례로 한국이 등장한다. 지난해 ‘조국 사태’와 올해 ‘인국공(인천국제공항) 논쟁’ 등 공정을 둘러싼 홍역을 반복해서 치르고 있는 만큼 시의 적절하게 펼쳐볼 만한 책이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