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마지막 눈인갑다’… 병상서 남긴 구순 노모의 말들

입력 2020-11-05 21:33

“이게 올해 마지막 눈인갑다.”

2019년 1월 병실에 있는 구순의 노모가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며 한 이 말에서 아들은 ‘마지막’이라는 말에 가슴이 저민다. 아들에겐 “엄마가 이생에서 마지막 보는 눈”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아들의 불길한 예감대로 노모는 다시 겨울을 맞지 못하고 그 해 늦가을 단풍이 고울 때 세상을 떠났다.

‘엄마의 마지막 말들’은 박희병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1년의 시간 동안 병상의 어머니를 보살피며 들었던 말과 그에 대한 생각을 기록한 책이다. 말기암과 알츠하이머성 인지저하증을 동시에 앓은 어머니가 남긴 말을 실마리로 어머니와 가족, 삶과 죽음에 대해 되돌아본다. 동시에 말기 환자의 호스피스 병동 생활과 의료 현실에 대한 관찰기이기도 하다.

저자의 노모는 몸과 정신이 쇠약해지는 상황에서도 아들과 가족에 대해서만큼은 비교적 또렷하게 인식한다. 완화의료 도우미가 저자를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었을 땐 “셋째!, 선생님!”이라고 답한다. 인지장애가 있었지만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저자를 알아보지 못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병상에 있지만 자식과 가족에 대한 걱정은 계속된다. “춥다. 옷 더 입어라” “니가 요새 마이 말랐다. 밥은 묵나?” “학생들 가르친다고 힘들제? “느그 아버지 밥차리줐나?”처럼 무시로 걱정이 전해진다.

병이 깊어지면서 노모의 걱정은 시공간을 넘나들기도 한다. 노모는 1970년대 저자의 집으로 형사들이 찾아온 것을 떠올린 듯 “희병아! 도망가라! 얼른 도망가라!”라는 말을 갑자기 했다.

노모의 말은 대개 짧고, 어떤 때는 단어 하나에 그칠 때도 있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이 더해지면서 적잖은 울림을 준다. “사는 기 참 힘들다”에선 생의 마지막을 앞둔 이의 고단함이 전해지는 한편 “좋은 때도 많았다”를 통해서는 굴곡진 삶 속에서도 이를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느껴진다. 노모가 세상을 떠나기 보름 전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상황에서도 저자를 본 후 반가운 얼굴로 남긴 “아들”이라는 2음절은 아들에게 한 마지막 말이 됐다.

어머니가 남긴 말을 통해 저자는 말기 환자를 대하는 의료 현실의 문제점을 꼬집기도 한다. 저자가 1년 사이 병원을 계속 옮겼듯이 수시로 병원을 옮겨 다녀야 하는 호스피스병동의 현실,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기보다 병실 관리를 더 중시하는 듯한 의료진의 태도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 있다. 특히 어머니가 남긴 말을 통해 이같은 현실이 환자들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고 있음도 보여준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