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공백

입력 2020-11-05 18:09

이혼 부모가 맘대로 결정한 인생
우리들을 두고 집을 나갔을 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외로웠을까 슬펐을까
아니면 어깨의 짐을 내려놓고 편안해졌을까

엄마가 집을 나가고 3개월 후
아빠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삼형제가 할머니와 살면서

도시락은 알아서 싸야 했기에
열어 보는 기쁨도 없었다
“울 엄마, 또 오이 넣었어.”
그런 말 한 번이라도 해 보고 싶었다

밤늦게 돌아와도
친구를 불러도 화내는 사람 없어
편하다고 떠벌렸지만 사실은 힘이 들었다

스무 살 때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는 여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10년 만에 만나게 되었다
어떤 얼굴을 할까, 뭐라 말할까
하지만 만나자마자 저절로 입이 터져
모르는 사이 웃는 얼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함께 살게 되어서
엄마는 일 나가는 내게 도시락을 만들어 주었다
출근 도중에 살짝 열어 보니

계란말이, 닭튀김, 소시지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뿐
떨어져 있어도 기억하고 있었구나
자식이 좋아하는 것

이제부터 매일 10년분의 공백을
도시락에 메꾸어 가렵니다

나라 소년 형무소 시집 ‘하늘이 파래서 흰색을 골랐습니다’ 중

소년형무소 재소자가 쓴 시를 묶은 시집. 엮은이가 머리말에 쓴 대로 당연한 감정을 당연하게 드러내지 못했던 이들의 시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