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못 쓰던 내가 춤을… 이제 파킨슨 환자 아닌 댄서라우”

입력 2020-11-05 04:05
파킨슨병 환자를 위한 무용 프로그램 댄스 포 피디 강습이 진행되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한 ‘스튜디오 마루’ 현장 풍경. 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매주 월요일 이 프로그램을 통해 파킨슨병 환자에게 예술적 경험을 제공한다. 박민지 기자

“여러분~ 손가락을 차례대로 접어주세요. 잘 안되면 리듬을 타면서 하면 조금 더 쉬워요. (중략) 지금 우리는 산에 올라가는 상상을 해볼 거예요. 이제 눈앞에는 단풍이 든 나무들이 절경을 이룰 거예요. 산에는 어떻게 올라갈까요? 자, 따라 해보세요.”

조용필의 명곡 ‘바운스’에 맞춰 파킨슨 환자 10여명이 몸을 흔들고 있는 이곳은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한 ‘스튜디오 마루’다. 손가락을 접거나 의자에 앉아 다리 한쪽을 들어 올리는 단순한 동작인데도 몇 분이 지나자 모두가 땀에 흥건하게 젖었다. 거동이 불편한 이들은 몸을 살짝 비트는 동작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할 수 있어요” “와,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같은 칭찬에 연한 미소를 보이다가 “도와주겠다”는 제안에는 “혼자 해보겠다”며 애를 썼다.

춤추는 파킨슨 환자들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매주 월요일 운영하는 ‘댄스 포 피디(Dance For PD-Parkinson’s Disease)’는 춤이라는 매개로 파킨슨병 환자에게 몸과 마음, 삶을 바꿀 힘을 주는 세계적 교육 프로그램이다.

최근 참관한 현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평소보다 적은 인원이 모였다. 지금까지는 약 20명이 함께했는데, 코로나19 이후에는 10명 안쪽으로 참가 신청을 받는다. 이날은 11명이 현장을 찾았다. 사전 예약은 못 했지만 ‘혹시나 춤을 출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발길을 재촉했다고 했다. 이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 센터 직원들은 어느 때보다 문진표 작성과 발열 체크에 공을 들였다. 원형으로 삥 둘러앉는 강습 특성상 환자 간 거리두기는 비교적 수월했다.

다만 옆 사람의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하며 이어가는 동작은 모두 없앴다. 강습의 시작과 끝에 릴레이 인사가 이뤄지는데, 한 명씩 돌아가며 옆 사람에게 무용 동작을 가미해 자유롭게 인사를 건네는 식이다. 보통은 스킨십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지만, 코로나19 탓에 눈을 마주 보며 미소를 건네는 동작으로 대체했다. 강습을 마무리하며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인사를 나누는데, 이들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우리도 춤을 출 수 있구나’. 이들의 표정에서 벅찬 마음을 읽었다.

이은형 강사는 “인사를 이어가며 옆 사람과 교감하는 시간에 가장 큰 비중을 둔다”며 “파킨슨 환자들은 표정과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지만 인사하는 동안 만큼은 반가움과 고마움을 표현하도록 독려한다. 코로나19로 서로 안아줄 수는 없지만 눈빛으로 감정을 주고 받고 있다”고 말했다.

왜 춤을 출까… “고립감 극복”

2001년 브루클린 파킨슨 그룹의 설립자 올리 웨스트하이머의 제안에서 댄스 포 피디가 시작됐다. 그는 파킨슨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무용강좌를 만들고 싶다며 미국의 마크 모리스 댄스 그룹(MMDG)에 연락을 해왔다. 올리는 치료 요법이 아닌 무용의 기술적·예술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전문 무용 강습을 원하고 있었다. 파킨슨병은 대표적인 퇴행성 뇌신경질환이라 운동이 특히 중요한데,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다. 인지능력은 그대로인데, 몸을 쓸 수가 없으니 신체기능의 저하는 곧 우울증으로 번지곤 했다.

댄스 포 피디를 만든 데이비드 레벤탈의 강습 모습.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제공

MMDG 수석 무용수였던 데이비드 레벤탈의 눈이 번뜩였다. 무용이 파킨슨 환자에게 더없이 좋은 치료제가 될 것 같았다. 그는 파킨슨병이 야기하는 신체적·사회적 표현의 문제를 잠시나마 창조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현대무용이나 발레 등의 움직임을 가져와 치료 요법보다 무용의 미적인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 댄스 포 피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현재 17개국, 125개 지역 사회에서 시행되고 있고, 국내에서는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무용수 직업전환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2017년 9월 도입했다. 이은형 강사는 “예술을 몸으로 경험하면서 치료의 효과도 같이 얻어갈 수 있다”며 “예술을 통해 심적인 위로와 자기표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학계에서도 영향력을 인정했다. 걷기 등 단기 이동 능력이 향상되고, 삶의 질 개선 등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봤다. 무엇보다 강습에서 만난 동료들과 형성하는 긴밀한 유대감이 고립감을 이겨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파킨슨병 환자인 부인과 함께 3년째 강습에 참여하고 있는 A씨(65)는 “몸을 못 움직이던 사람이 지금은 집에서 거울을 보며 춤을 춘다”며 “전혀 못 쓰던 다리를 움직이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어 “집에만 있던 부인이 친구들을 만나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게 가장 좋다”고 덧붙였다.

은퇴 무용수에게 새 기회를

댄스 포 피디의 사회적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용수들에게 또 다른 직업의 기회를 제공한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이 프로그램을 들여온 이유도 부상 등의 이유로 일찍 은퇴한 무용수에게 또 다른 직업의 기회를 선사하기 위해서다.

센터의 지원을 통해 현재까지 약 60명의 무용수가 새 삶을 시작할 기회를 부여받았다. 이 중 15명이 현재 센터 또는 센터와 연계된 요양병원 등으로 파견돼 파킨슨 환자들을 만나고 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