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포츠] 코로나에 따릉이 타는 시민들 “운동도 여가도 모두 OK”

입력 2020-11-07 04:02
가방을 맨 직장인이 3일 퇴근시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대여소에서 따릉이를 빌려가고 있다. 코로나 이후 따릉이가 운동과 여가 목적 뿐 아니라 대중교통의 보조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올해 1~9월 따릉이 이용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23% 이상 증가했다. 최현규 기자

“잠시만 지나갈게요~.”

주말에 서울의 각 자치구에서 한강 공원까지 연결된 자전거 도로를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달리다 보면 심심찮게 이런 외침을 들을 수 있다. 청명한 가을 날씨 속에 자연의 경치를 즐기며 운동하려는 시민들이 부쩍 늘어서다. 수많은 자전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속력을 내려는 고성능 자전거와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일정 속도 이상 나오지 않는 따릉이 사이에선 아슬아슬한 추월과 양보의 풍경이 자주 펼쳐진다. 5년째 라이딩을 즐기고 있다는 윤종수(69)씨는 “사람이 채여서 속력을 낼 수가 없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되니 아무래도 밖에서 자전거 타려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고 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운동과 여가 생활에서도 ‘언택트’가 대세다. 갑갑한 일상생활을 벗어나, 타인들과 거리를 두고 경치를 즐기며 운동할 수 있는 자전거는 언택트 운동의 대표 격이다. 자전거 이용자 수의 증가는 따릉이 이용건수 추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따릉이 이용건수는 1752만7023건으로 전년 동기(1421만6201건) 대비 23% 이상 증가했다. 올해 5월엔 처음으로 주말 하루 이용 건수가 10만건을 넘어섰고, 날씨가 선선해진 지난 9월엔 281만1990건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약 35% 증가한 수치다. 따릉이 도입 대수도 마찬가지. 올해 도입 대수는 지난해(4500대)보다 약 78% 늘어난 8000대로, 올해까지 따릉이 누적 배치대수는 총 3만7500대가 된다.

갑갑해서, 안전·편리해서 타는 시민들

안양천을 따라 한강까지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에선 코로나 이후 따릉이를 타기 시작했다는 시민들을 다수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이유는 ‘갑갑해서’였다. 지난달 25일 만난 교사 강모(27)씨는 “코로나 때문에 어디 다닐 수도 없는데, 요새 주말에 하루 1시간 이상 따릉이를 타면서 갑갑함을 해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방된 곳에서 타인과 거리두기를 하며 운동할 수 있단 점도 따릉이를 타게되는 이유다. 구로구에 거주하는 회사원 이우승(45)씨는 “원래 헬스장을 다녔지만 코로나 때문에 운동을 쉬게 됐다”며 “따릉이를 타니 개방된 곳에서 풍경까지 즐길 수 있어 아예 자전거를 살 생각까지 한다”고 했다.

‘편리성’도 따릉이의 인기 비결이다. 서울 시내 자전거 도로의 총 연장수는 2017년 기준 888.7㎞에서 지난해 말 940.6㎞까지 늘었다. 자전거만 타면 서울 근교까지 속속들이 여행하기 더욱 쉽게 된 것. 따릉이 대여소 수도 2017년 1290개에서 올해 말엔 2085개까지 늘어난다. 지하철엔 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경사로가 설치되고 있고, 버스와 택시에 거치대를 설치하는 시범사업도 진행 중이다. 이에 출퇴근 시 대중교통의 보조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서울 광진구에 거주하는 한혜진(33)씨는 “코로나 이후 대중교통이 찝찝해서 가까운 곳 갈 때도 따릉이를 이용한다”며 “대여소가 동네 곳곳에 있어 아무데나 반납해도 되는 게 편하다”고 했다. 이어 “오늘 처음 남자친구를 데리고 나와 ‘따릉이 데이트’ 중인데, 연애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자전거 산업도 역대급 수혜

“자전거 용품을 사러 아울렛에 갔는데 최근 사이클복 수요가 훨씬 늘었다고 하더라구요.” 김소저(37)씨는 지난 8월부터 다른 가족 3명과 함께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이후 자전거와 사이클복, 헬멧까지 장비를 모두 구매했다. 가족들이 타는 자전거의 평균 가격만 150만원에 달한다.

코로나 이후 자전거 산업도 역대급 호황을 맞았다. ‘없어서 못 팔’ 정도의 초과수요 상태. 2018년 8월 김포 아라뱃길 근처 아울렛에 자전거용품 매장을 입점시킨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해당 매장은 올해 7~9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14%나 성장했다”고 밝혔다.

국내 최대 자전거 공급사 중 하나인 A사 관계자도 “1분기 초에는 중국 공장을 풀로 돌려도 수급이 안 될 정도였고, 지금도 인기 차종은 수요를 못 따라잡고 있다”며 “내년 상반기까진 이런 상태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A사 일반자전거의 올해 1~9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4%, 전기자전거의 경우 11%씩 각각 증가했다. 각 대리점에서 몇 년간 쌓여있던 재고는 모두 소진됐고, 부품과 원자재 재료비까지 뛰어 자전거 가격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도로 이용자 인식 개선 절실
쌀쌀해진 날씨 속에서도 평일 밤 늦은 시간까지 각종 장비를 모두 갖추고 라이딩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 최현규 기자

“자전거우선도로에서 자동차들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바짝 붙어 위협을 느꼈어요. 자전거와 도로를 공유한다는 개념이 아직 운전자들에게 희박한 것 같아요.” 평소 라이딩을 즐기는 직장인 허태영(32)씨의 말처럼, 자전거 이용이 증가하면서 접촉사고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자동차와 자전거가 공유하는 ‘자전거우선도로’에서 아직까지 ‘우선권’을 갖고 있는 건 속력이 더 빠른 자동차여서다. 자전거 이용자는 항상 위협을 느끼며 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이신애 서울연구원 박사는 “아직도 우리는 자동차가 주 교통수단인 시대에 살고 있어 도로의 주인이 자동차로 인식된다”며 “자전거가 하나의 교통수단으로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기에 속도가 다른 자동차와는 공간을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에서도 노력하고 있지만 이미 자동차 위주로 설계된 도로를 대폭 재구성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3차선 이상의 경우 가장 오른쪽 차로는 저속차량만 다닐 수 있게 하는 ‘지정차로제’로의 제도 개선을 꾸준히 건의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며 “때문에 일단 자전거와 도로를 공유해야 한다는 운전자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도로 공유’의 문제는 ‘자전거전용도로’에서도 뜨거운 화두다. 전동 킥보드 등 자전거와 속도가 비슷한 새로운 교통수단인 ‘원동기장치자전거’가 새로 등장하면서 접촉사고가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음달 10일엔 도로교통법 개정안 시행으로 자전거전용도로에서의 원동기 이용이 합법이 된다. 이 경우 이번엔 반대로 자전거 이용자들이 원동기와 함께 도로를 공유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 박사는 “자전거와 원동기 등 속도가 비슷한 교통수단끼리 함께 도로를 쓰는 건 세계적인 추세”라며 “이용자들의 충분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