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조각가 우예본(65) 작가가 보여준 높이 30㎝ 정도의 나무 십자가 작품에선 붉은빛이 났다. 참죽나무의 붉은 빛깔을 그대로 살렸기 때문이다. 원뿔처럼 아래로 갈수록 두꺼워지는 나무의 두께, 물을 떨어뜨려 번진 듯한 모양의 불규칙한 나이테도 있는 그대로 남겼다. 가운데 맨 아래쪽에 있는 나이테는 마치 사람이 손을 뻗고 있는 모양이다. 이 작품의 이름을 ‘주님과 동행’으로 정한 것도 이 나이테 때문이다.
“참죽나무는 딱 자르면 선홍빛 진이 흐르는데, 그 모습이 마치 주님의 보혈과 같다고 느꼈어요. 앞을 향해 가는 주님의 모습이 위쪽의 이 십자가고, 아래쪽의 나이테는 그런 주님에게 딱 붙어있는 제 모습이에요. 인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색깔과 모양이 나온 겁니다.”
개인 공방과 갤러리 겸한 경기도 안성 ‘슈브아트’를 찾아 최근 우 작가를 만났다. 오는 14일 개관 예배를 앞둔 카페 겸 갤러리는 어딜 둘러봐도 십자가였다. 손가락 하나 크기부터 2m 넘는 것까지 크기와 모양이 다른 십자가 작품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마당에는 아직 작업하지 않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주로 죽거나 썩은 나무들이다.
우 작가는 “나무는 죽을 때쯤 뿌리에서 꼭대기까지의 기름을 다 모아서 기름 덩어리를 남기는데 그게 작품의 소재가 된다”면서 “나무는 죽어야지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도 자신을 완전히 내놓고 나라는 존재를 없애 ‘오직 주님만입니다’ 하고 인정해야만 온전히 나아갈 수 있다”면서 “그게 나무와 공통점”이라고 했다.
우 작가가 십자가를 만들기 시작한 건 2006년, 수천억원 규모의 사업이 부도난 후부터다. 상심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에게 이종사촌 동생 김미엘(62) 전도사가 복음을 전했다. 김 전도사는 현재 그와 동역하며 조각 작업 외의 일들을 도맡아 처리해 주고 있기도 하다. 좌절하던 때에 주님의 손 형상을 보고 꽉 잡았다는 그는 김 전도사와 함께 집 근처 산으로 나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산에서 우 작가는 나무를 만났다.
“하나님을 만나긴 했지만 여전히 힘들고 서러울 때였어요. 산에 앉아 있는데, 문득 소나무 안에서 손가락 크기의 작은 송진 덩어리, 관솔이 보이는 거예요. 앙상해 보이는 그 모습이 꼭 십자가에 주님이 계신 느낌이 들었어요. 김 전도사와 둘이서 그걸 주워와 무작정 커터칼로 다듬기 시작했죠. 그렇게 조각을 시작했어요.”
갤러리 입구엔 그가 당시에 만든 손가락 크기의 십자가들이 모여있다. 조각을 배운 적 없는 그는 그렇게 10년 가까운 세월을 특별한 도구도 없이 작은 십자가를 만들며 보냈다. 어디를 둘러봐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십자가로 집안 곳곳을 채웠다. 우 작가는 그 과정을 ‘회개의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갤러리 이름을 히브리어로 ‘회개하다’는 뜻을 가진 ‘슈브’로 지은 것도 이 때문이다.
우 작가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 나름대로 착하게 산다고 살아왔지만, 그건 제 기준이었을 뿐 회개할 것들이 정말 많았다”며 “‘예수님을 본받자’는 의미로 이름을 ‘예본’으로 개명하고 계속해서 십자가를 조각하며 조용히 제 안에서 하나님을 마주했다”고 말했다.
그는 작업하기 전에 스케치를 하지 않는다. 썩으면 썩은 대로, 구멍이 나면 난 대로 그 모습 그대로를 담아내기 때문에 모양도 다 다르다. 우 작가는 오히려 그 흔적이 가장 아름답다고 강조했다. 나무를 지키기 위해 먼저 비바람을 맞아 썩어 단단해진 부분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심지어 나무가 품은 돌도 파내지 않고 함께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썩혀서까지 돌에게 내줄 공간을 만드는 모습이 마치 모자란 우리를 품어주시는 예수님을 닮았다”고 했다.
6년 전 그는 가구와 한옥을 짓는 한 목수의 작업실 처마 아래 공간을 빌려 큰 나무 작업을 시작했다. 무더운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한겨울 발에 동상이 걸리면서도 작업을 쉬지 않았다. 그렇게 만든 작품들로 2015년 경기도 평택의 집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집 밖으로 길게 관객이 줄지어 서고, 작품 대부분이 팔렸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이후 한 권사의 헌금으로 마련한 컨테이너 작업실에서 2018년 두 번째 전시회를 연 후 지금의 공간으로 옮겨왔다.
우 작가와 김 전도사의 가장 큰 바람은 이곳을 전도의 공간으로 삼는 것이다. 우 작가는 “사람들이 작품을 보면서 자신이 알지 못했던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겉모습은 크고 웅장한 나무도 그 속을 열어보면 모두 썩어있어서 쓸 수 있는 부분이 없기도 해요. 겉모습에 기대하며 스케치한 것은 다 쓸모가 없어지죠. 이곳에 오는 사람들도 있는 그대로의 나무 형태를 간직한 십자가들을 보면서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을 만나길 바랍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겐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는 공간이, 신앙이 있는 사람들에겐 영적인 시각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안성=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