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신의 계시

입력 2020-11-07 04:02

대한불교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는 지난달 14일 경기도 남양주 소재 한 사찰에서 발생한 기독교인 추정 방화 사건과 관련해 2일 성명을 내고 “개신교는 화합의 종교로 거듭나라”고 지적했다. 불교 종단이 기독교를 향해 성명까지 발표하며 ‘재발 방지’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경찰에 따르면 40대 여성 A씨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며 불을 질렀다고 한다. 일반적 기독교인들에게 A씨의 말과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기독교 신앙에선 이런 식의 믿음과 행위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이런 사건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2016년 1월 경북 김천에서는 60대 남성이 가톨릭 성당과 사찰에 들어가 성모상과 불상 등을 훼손했다. 당시 이 남성도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두 사건 모두 신의 계시라는 공통점이 있다.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어떤 신이기에 이웃 종교의 예배 장소에 들어가 불을 지르고 파괴하도록 계시를 내린단 말인가. 그들에게 신의 계시 또는 하나님의 계시가 내려졌다면 왜 다른 기독교인들에겐 그런 계시가 없는 걸까.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얘기는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접할 수 있다. 엘살바도르의 산티아고 산체스라는 남성은 수십 년 전 “굴을 파라”는 신의 계시를 받아 지금까지 굴을 팠다고 한다. 필리핀에서는 신의 계시에 따라 누가 대통령이 될지 발표하겠다는 목사도 있었고, 한국에서는 신의 계시를 받아 주식 투자에 성공한다며 수백 억원을 가로챈 사람도 있었다.

신의 계시는 역사 속에서도 등장한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을 끝낸 주인공, 잔 다르크 역시 신의 계시를 받고 전쟁에 참여했다. 시골 소녀였던 잔 다르크는 신의 계시를 받고 참전해 조국 프랑스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신의 계시 또는 하나님의 뜻을 내걸었던 십자군 전쟁만큼 그 후유증이 컸던 사례도 없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신학에서 계시(Revelation)란, 진리가 하나님에 의해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그 진리는 자연계시와 특별계시 형태로 나타난다. 자연계시는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세계 자체가 보여주는 하나님의 신성과 성품을 뜻한다. 특별계시는 기록된 말씀인 성경이다. 성경엔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 중심엔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구약성경은 예수가 오실 것임을, 신약성경은 예수가 이미 왔으며 하나님 나라가 시작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 계시의 이 두 가지 측면을 장엄하게 묘사한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시편 19:7)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계시엔 사랑이 충만할 수밖에 없다. 여기엔 어떤 폭력이나 시기, 분쟁, 적의, 모략, 무자비함 등이 들어설 곳은 없다. 예수가 성경의 핵심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은 성경 인물들처럼 하나님 계시를 받을 수는 없는가. 건강한 기독교 신학에서는 현존하는 성경 내용에 추가할 수 있는 계시는 사라졌다고 본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66권으로 충분하며 완벽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만약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면 그 내용은 성경에 부합해야 한다.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벗어난다면 그것은 계시가 아니라는 것이 기독교 내부의 공통된 약속이다.

주류 기독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인물과 그 단체들은 대개 자신들만 특별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며 그 경험을 절대화한다. 소위 ‘직통 계시’는 이단 사이비 단체들의 대표적 전유물이다. 절대다수의 기독교인이 알고 있는 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계시와 그의 뜻은 성경에 다음과 같이 명시돼 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5:16~18, 새번역)

신상목 미션영상부장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