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일을 겪으면 기적이 일어난 건지, 우연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간절히 기도한 내용이 이뤄졌다면 더 그렇다. 기독교 변증가로 유명한 CS 루이스(1898~1963)도 그랬다.
그는 런던 방문을 며칠 앞두고 이발소에 가려다 만남이 취소되는 바람에 이발 계획을 미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 이발소에 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단골 이발소로 간 루이스는 이발사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이발사는 루이스의 도움이 간절했다며 “오늘 꼭 오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참이었다”고 했다. 방문이 하루 이틀 늦어졌더라면 이발사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이발소로 온 건 이발사가 한 기도의 결과일까, 아니면 그저 우연일까. 루이스는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기도의 효력을 입증해 줄 증거는 무엇인가.”
책에는 이처럼 루이스가 자신의 경험과 연구를 토대로 기도를 다룬 글이 담겨있다. 글은 ‘순전한 기독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네 가지 사랑’ ‘예기치 못한 기쁨’ 등 그의 대표작과 편지와 시, 수필 등에서 발췌했다. 기독교 사상가이자 변증가인만큼 기도에 관한 잘못된 통념을 논리적으로 격파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책은 루이스 작품에 익숙지 않은 독자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도록 각 장의 제목을 질문 형태로 편집됐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인용한 부분에서는 작품 배경을 요약한 ‘편집자 일러두기’도 달았다. 각 장 말미엔 원제와 출전을 표기해 독자가 추후 더 깊은 독서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루이스는 “기도는 과학처럼 확실한 경험적 증거를 결코 얻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어떤 일이 기도한 대로 흘러갈 순 있지만, 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적이 일어나도 그 원인이 기도라는 보장은 없다. 대신 루이스는 기도를 ‘요청’으로 봤다. “지혜가 무궁한 신이 유한하고 어리석은 피조물의 요청을 듣는다면, 당연히 승낙할 때도 있고 거부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과의 소통이 기도의 핵심인데, 응답 여부에만 신경 쓴다면 본질과 멀어진다는 지적도 한다. “기도는 자동판매기가 아니다. 마법이 아니다.… 기도한 대로 받는 사람을 왕에게 총애받는 신하로, 즉 왕인 하나님께 말발이 서는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더 심각한 문제다. 이에 관한 답은 겟세마네에서 거절당한 그리스도의 기도로 충분하다.”
‘하나님이 절대자라면 내 필요를 알 텐데 왜 구해야 하느냐’며 ‘기도 무용론’을 주장하는 이들에겐 이렇게 응수한다. “하나님은 우주의 이치를 정할 때 우리의 행위도 변수로 만들었다.… 전쟁에 이기게 해 달라는 기도가 미련하고 외람되다면, 비 올 때 우비를 입는 행위도 똑같이 미련하고 외람되다. 당신이 비에 젖어야 하는지 아닌지도 하나님이 어련히 알지 않겠는가.”
일견 거룩하지 않아 보이는 시시콜콜한 내용도 기도 내용으로 적합할까. 기도에 가장 적합한 마음가짐은 ‘우리 속마음 그대로’라는 게 루이스의 생각이다. 하나님과 교감을 구하는 기도는 수준이 높고, 소소한 걸 구하는 청원 기도는 급이 낮다는 통념도 반박한다. 그는 “하나님께 유치한 것을 구할 줄 모르면 큰 것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고상해선 안 된다”며 “때로 우리가 작은 일로 기도하지 않는 건 하나님 위엄보다는 우리 체면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루이스는 오랜 시간 견실한 기도 습관을 유지했다. 전통 기도서를 애용해 기도했고, 기도 노트엔 자기 기도 제목은 물론 주변인의 기도 제목도 정리했다. 훗날 기도를 부탁한 이를 만나면 상황이 개선됐는지를 묻고 기도 노트의 내용을 고치곤 했다. 기도에 관해 묻는 이들에겐 수시로 편지를 보내 조언했다. 책을 편집한 미국 하퍼원 출판사의 마이클 모들린 편집장은 “루이스가 기독교에 관해 한 말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보여준 삶도 주목받길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펴냈다”고 밝혔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뿐 아니라 기도에도 일가견을 보인 신앙인 루이스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