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간 교정선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눈물 어린 내조 덕이었다. 아내는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자매결연을 한 재소자가 출소할 때면 그에게 입힐 털옷을 밤을 새워가며 만들었다.
사회에 대한 복수심에 가득 찬 김영일(가명)이라는 재소자가 있었다. 그는 내 아내가 떠준 스웨터로 새사람이 됐다. 아내가 그에게 털조끼를 짜 입히려고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출소 명령이 떨어졌다. 그가 출소하기 전에 털조끼를 완성하기 위해 아내는 관절염으로 통증이 심한 손이었는데도 사흘 밤을 꼬박 새웠다. 아내는 출소하는 날 털조끼를 들고 뛰어가서 그에게 입혀줬다.
영일이는 퉁퉁 부은 아내의 손을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범죄의 유혹이 있을 때마다 이 손을 생각하겠노라”며 다짐하고 떠났다. 그는 현재 작은 인쇄소를 경영하며 출소자까지 돕는 어엿한 시민이 됐다.
아내는 부족한 살림에도 재소자 교육생들에게 학용품과 교재를 지원했다. 수시로 그들을 찾아가 상담했고, 두 달에 한 번씩은 꼭 위로회를 열어줬다. 출소자들을 집으로 데려와 먹이고 입히며 취업도 알선해줬다. 1년에 두 번 검정고시 시험날이면 도시락을 100여개씩 싸야 했지만, 한 번도 불평 없이 감당했다.
나는 이런 아내를 통해 겸손과 감사와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 미국에 간증 집회하러 갔을 때 일이다. 규모가 제법 큰 장애인 교회에서 간증하고 사례비로 300달러를 받았다. 교회를 나와 목적지로 향하던 중 사례비 봉투가 없는 것 같아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장애우분들을 보니까 사례비를 받을 수 없어 도로 헌금하고 왔다”며 환하게 웃었다.
누군가가 대접을 하겠다고 초대를 해도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면 으레 아내가 먼저 계산을 해서 대접하는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일이 다반사였다. 가출한 아이들이 길거리를 헤매고 다니면 집에 데려와서 큰 플라스틱 용기에 물을 담아 목욕시키고 새 옷으로 갈아입힌 후 집으로 돌려보내곤 했다. 홀로 사시는 무의탁 할아버지들의 빨래와 반찬을 해드리는 것은 물론이고 그분들이 입원하면 병원까지 찾아가 목욕을 시켜드렸다.
나보고 ‘청송의 천사’라고 칭찬하는 이들이 많다.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이런 긍휼의 마음을 가진 아내가 없었다면 하나님의 사명을 혼자 감당해낼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나는 교정선교를 하면서 수용자들이 출소 후 가정을 꾸리는 것을 본다. 그 가정이 모두 화목하고 평안한 것만은 아니었다. 서로 이해하고 함께 고난을 같이 하고자 할 때 가정은 유지된다. 서로의 욕심과 이기심을 따라 살아가면 가정은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 나는 새롭게 출발하는 출소자들에게도 겸손과 감사와 자족하는 법을 배우도록 늘 권면한다.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아내 박혜심 권사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