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독감백신 불신, 되짚어봐야 할 3가지

입력 2020-11-05 04:06

“코로나 백신이 나오기 전에 이런 일을 겪은 것이 더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독감백신 접종자 사망 신고가 잇따르고 백신 불신이 포비아(공포) 수준으로 커지자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가 SNS에 올린 글 중 일부다. 이번 사태가 코로나19 백신 개발 전에 터진 것이 우리에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머지않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재현되지 말란 법이 없다. 수십 년간 사용돼 온 독감 백신과 달리 코로나19는 이제껏 한 번도 겪지 못한 바이러스여서 여러 단계 임상시험을 거친 백신이라 하더라도 일반 대중에게 보편 접종했을 때 예상치 못한 상황과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일련의 독감백신 사태가 당장은 당혹스럽고 불안하더라도 혹시 닥칠지 모를 더 큰 화(禍)를 막는 ‘쓴 약’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려면 독감백신 불신 사태가 빚어진 과정을 하나하나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상온 노출 사고로 인한 국가접종사업 일시 중단, 일부 백신에서의 백색 이물질 발견에 이어 ‘오비이락’격으로 고령층 사이에 백신 접종 후 숨지는 사례가 연이어 보고되면서 불안감이 증폭됐다. 다행히 독감백신 접종 후 신고된 사망자(3일 기준 88명)의 대다수는 백신 접종과 인과성이 없는 걸로 파악됐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사실 독감백신 접종은 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업이었다. 대부분은 백신 공급 차질이나 덤핑 접종 등 의료계 내부에서의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을 뿐, 이처럼 큰 사회적 파장으로 이어진 예는 없었다. 유독 올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우선은 방역 당국과 국민 모두 독감백신 접종을 연례행사쯤으로 생각하고 조금 방심했던 게 아닌가 싶다. 당국이 코로나19와 독감의 동시 유행이라는 트윈데믹(twindemic) 상황을 우려해 접종을 서두르라고만 강조했지, 안전한 접종에는 다소 신경을 덜 쓴 느낌이다. 과거 독감백신 접종 후 신고된 이상 반응이나 사망 관련 세세한 데이터와 백신 접종과의 인과성 여부를 제때 알리지 않은 점도 지적된다. 그간의 이런 정보를 접할 수 없었던 국민 입장에선 ‘별 일 없겠지’ 하고 가볍게 여길 수 있다. 당국의 리스크(위기)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했다.

또 하나, 전문가들의 역할도 아쉬운 대목이다. 의학자들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독감백신 접종과 사망의 인과성 여부를 정확히 규명하고 백신 접종의 방향성도 제시해야 한다. 특히나 불안과 불신이 커지는 상황에선 의학자 개인 의견보다는 다수의 정리된 목소리가 필요하다. 가급적 창구도 단일화해야 한다. 하지만 최고 전문가 단체인 대한백신학회는 계속 접종을 권고한 반면 의사협회는 1주간 접종 잠정 중단을 주장해 혼란을 부추겼다.

언론 보도도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언론은 백신 접종과 사망의 연관성이 단순히 시간적 선후(先後)에 불과한 것인지, 백신 성분 이상 때문인지를 충분히 검토하고 판단하지 않은 채 속보를 쏟아내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불안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 기자협회가 ‘언론이 만든 백신 공포’라고 자인했다. 국민 생명, 안전과 관련된 감염병 보도만큼은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비록 백신이 ‘두 얼굴’을 갖고 있지만 신종 감염병에 대응할 최고의 무기임은 역사적으로 입증돼 왔다. 이런 백신 접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어느 나라나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리고 회복하는 데는 무너져 내린 시간의 몇 십 배가 걸린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라는 또 한 번의 시험대가 앞에 놓여 있다. 각자 영역에서 철저한 준비와 자기 검열을 통해 같은 실수와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