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후 들어온 젊은 환자 3명이 영향을 받아 힘들어했다.”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이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개그우먼 박지선씨가 모친과 함께 자택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날이었다. 당부는 딱 하나. ‘유명인 사망 사건 보도는 사회적 파급효과가 클 수 있다. 신중해 달라.’
돌이켜보면 연예인 사망 소식은 한꺼번에 몰려왔다. 가수 설리가 지난해 10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고 약 한 달 뒤 그와 절친했던 구하라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2008년 9월엔 배우 안재환이, 10월에는 배우 최진실의 부고가 떴다. 일본에서는 최근 석 달 새 배우 5명이 숨졌는데, 이들은 지난 7월 가장 먼저 숨진 미우라 하루마와 크고 작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모두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었다.
한 연예인의 죽음은 모방심리를 불러오는데, ‘베르테르 효과’에 기인한다. 1974년 미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 이후 같은 죽음이 뒤따르는 현상을 발견했다. 연예인의 잇따른 사망 뒤에 더 많은 대중의 죽음이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자살 인구는 전년보다 증가했다. 보건복지부는 연예인을 모방하려는 심리가 영향을 줬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했다. 설리가 사망한 10월부터 자살 인구가 급증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앞서 최진실 사망 이후에는 두 달간 1008명이 목숨을 끊었다. 통계에 따르면 연예인 1명이 숨지면 두 달간 평균 600명이 같은 방법으로 사망한다.
베르테르 효과는 연쇄 사망이라는 사회 현상을 표현하고자 1774년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주인공 이름을 따오긴 했지만, 그때와 지금의 패턴은 다르다. 베르테르가 약혼자가 있는 로테를 사랑하다 노란 연미복을 입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내용을 담은 이 소설은 그야말로 신드롬이었다. 너도나도 베르테르처럼 입고, 걷고, 말했다. 돌풍급 인기는 급기야 모방 자살로 이어졌고, 소설 유통 중단 사태까지 벌어졌다. 당시 베르테르를 선망했던 청년들은 고전주의를 거부하며 낭만주의를 이끈 집단인데, 베르테르와 자신들의 죽음은 형식에 갇힌 제도에 대한 저항이면서 경직된 기독교 관념을 향한 몸부림이라고 했다.
하지만 필립스는 현대에서 전염되는 죽음들은 단순한 모방인 것으로 봤다. 문제는 미디어다. 유명인 자살 보도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대중은 평소 우울 증세가 있든 없든 심리적 영향을 받게 되고, 유명인과 같은 방법을 시도한다. 모방 자살률은 해당 지역의 신문 구독률과 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는 미디어의 부정적 영향력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실제로 홍콩 유명 배우 장국영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2003년에는 6명이나 그가 숨진 홍콩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을 찾아가 뛰어내렸다.
이때 집중해야 할 건 1994년 록그룹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사망 사건 보도다. 그가 목숨을 끊었을 때 언론은 행위 묘사보다 마약,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에 천착했다. 특히 “남편의 죽음은 헛되고 무의미하다”는 부인의 인터뷰를 내보내면서 베르테르 효과 차단에 주력했다. 노르웨이의 경우 자살 사건을 아예 보도하지 않는다. 터키에서는 사진·영상 없이 글로만 알린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유족이 원하지 않는 유서 공개도 주저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미화다. 극단적 선택을 영웅적 행위나 낭만적 해결책처럼 포장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보도는 이런 행위를 친숙하게 느끼게 하고, 환상을 심어주며, 문제 해결의 한 가지 수단으로 여기게 만든다.
떠난 이를 애도하는 일만큼 남은 이의 삶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전문가에 따르면 유명인 자살 보도 후 열흘까지가 대중에게 가장 위험한 시기다. 그래서 지금은 작가 허지웅의 에세이 ‘살고 싶다는 농담’에 나오는 이런 말이 필요하다. 그가 박지선씨 사망 이후 널리 알려달라고 했던 내용이다.
“여러분의 고통에 관해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중략) 그러나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당신이 살기로 결정한다면, 더 이상 천장에 맺힌 피해의식과 바닥에 깔린 현실이 전과 같은 무게로 당신을 짓누르거나 얼굴을 짓이기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 그 밤은 여지껏 많은 사람을 삼켜왔다. 그러나 살기로 결정한 사람을 그 밤은 결코 집어삼킬 수 없다. 그러니까,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