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투표권을 얻게 됐을 때부터 투표를 할 때마다 고민했던 것은 ‘비판적 지지’였다. 마음에 드는 정당이나 후보가 없을 때, 그리고 어쩌다 마음에 드는 이가 있을 때에도 대의를 위해서라는 변명을 해가며 비판적 지지를 선택했다. 적지 않은 이들이 그랬다고 토로하는 것도 보고 들었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듯한 싸움과 패배가 반복된 후 혁명 같은 변화를 꿈꿀 자신감도, 실현할 능력도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대안으로 비판적 지지를 고민했다. 군사정권하에서 혁명 같은 변화는 한국 사회가 추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라고 애써 자위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비록 혁명적인 변화를 추동하진 못하겠지만 그 결정을 통해 이 사회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를, 그 고민이 사회의 개혁에 밑거름이 되기를 기도했다. 그 기도가, 그 한 표 한 표가 모여 이 나라를 이만큼 만들어 왔던 것이라고 믿는다. 군사정권에서 민간정부로의 평화적 이양, 선거에서의 승부를 통해 여당과 야당이 수시로 바뀌는 수평적 정권교체의 문화를 만든 것은 그 힘에서 나왔던 것이라 확신한다.
비판적 지지는 군사정권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의 테제만은 아니다. 지난 4월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에 압도적 의석을 몰아준 국민의 선택에는 상당수 비판적 지지가 포함돼 있다. 현 여당과 당의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았음에도 대안이 없어서 혹은 그나마 다른 정당보다는 여당이 우리 사회를 한 걸음씩 개혁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기대에 호응하듯 여당은 검찰 개혁, 언론 개혁, 정치 개혁의 깃발을 들었다. 다만 개혁의 기치는 높이 들었으되 논의의 과정은 들리지 않고 잡음만 무성하다. “검찰은 직접수사 위주의 수사기관이 아니라 진정한 인권옹호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법무부 장관의 말과 “검찰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를 엄정하게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검찰총장의 말이 저 멀리 동떨어진 채 싸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겠다. 인권옹호기관으로 변해야 한다는 명제와 권력 비리를 엄정하게 수사해야 한다는 명제를 던져주고 평검사들에게 어느 것이 맞는지 답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두 명제는 모두 참인데 정치적 해석이 끼어들어 두 말 사이에 차이와 논쟁을 만들고 있다.
법정에서조차 자신의 소신과 의기를 증명하려 하지 않는 고발자의 말로 기자와 검사의 결탁을 결론짓고, 그 결론을 뒷받침할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는 몸까지 던져야 하는 것이 언론 개혁의 지난한 과정인지 잘 모르겠다. 자신에게 유리한 대목만 발췌해 이곳저곳에서 떠들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을 좌표 찍어 저격하는, 소위 ‘기레기’의 짓을 모방하는 정치인들의 행위가 언론 개혁으로 가는 지름길인지 몽매한 24년차 기자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린다.
소속 당 정치인의 ‘중대 잘못’으로 재·보궐 선거 사유가 발생했을 때 해당 선거구에 후보를 내지 않기로 호기롭게 결의했던 정당이 민감한 잘못을 한 소속 단체장의 궐위로 인한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하는 것이 결단이 될 수 있음을 최근 알았다. 정당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당헌을 소수의 참여로 바꿀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숫자만 이리저리 돌려 만들 수 있다면 한 나라의 헌법 개정도 어렵지 않음을 알겠다.
비판적 지지를 받는 대상이었던 이들은 이제 비판적 지지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동의를 받아 달라고, 알아서 챙겨 달라고 표를 준 건 아니었지만 열성당원 26%만의 선택으로 정치 개혁의 깃발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거대 여당의 모습을 지켜보는 눈에선 피눈물이 나온다. 다만 비판적 지지자들은 말이 없다.
정승훈 사회부장 shjung@kmib.co.kr
정승훈 사회부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