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정시 확대’에 불복한 서울대 입시안, 학생들 ‘멘붕’

입력 2020-11-09 00:04

정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인 정시모집 비중을 늘리도록 사실상 강제하자 서울대가 정시에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방식의 정성평가 요소를 넣는 방식으로 응수했다. 정부 요구대로 수능 영향력을 늘리도록 두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른 주요 대학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만약 서울대 방식이 타 대학으로 확산하면 고교생들은 수능과 내신, 비교과 등 어느 하나 소홀히 하기 어려운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정부의 대입 정책과 상위권 대학들의 ‘우수 학생 쟁탈전’, 학교생활기록부 반영 비율을 늘리려는 교사 그룹이 뒤엉킨 가운데 학생·학부모의 목소리는 실종됐다는 평가다.

서울대의 응수

서울대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2023학년도 대학 신입학생 입학전형 예고’는 일종의 수험생 서비스다. 현재 고교 1학년 대상인 2023학년도 대입의 세부 사항은 내년 4월 발표 예정인데 힌트를 미리 준 것이다. 서울대 입시가 다른 주요 대학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수험생과 학부모 주목도는 클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의 예고는 전반적으로 수능 영향력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먼저 수시모집 지역균형전형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완화했다. 기존에는 ‘국어 수학 영어 탐구 4개 영역 가운데 3개 영역 이상 2등급 이내’였다. 이를 ‘4개 영역 중 3개 영역 등급 합이 7등급 이내’로 바꿨다. 종전에는 3등급 하나만 나와도 탈락했으나 2023학년도에선 3개 영역 등급 합이 7등급만 넘지 않으면 된다. 극단적으로 ‘1+1+5등급’ 조합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정시모집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기존에는 수능 점수가 당락을 좌우했다. 그러나 2023학년도부터 신설되는 정시 지역균형전형은 수능 60점과 교과평가 40점을 합산한다. 정시 일반전형은 1단계에서 수능 점수 100%로 2배수를 뽑고 2단계에서 수능 80점과 교과평가 20점을 합산한다. 교과평가는 학생부를 평가하는 것이다. 두 명의 평가자가 지원자 학생부를 A~C등급으로 구분한다. 평가자 주관이 개입하는 정성평가로 내신 등급만 보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충실도를 따져보는 학종과 흡사한 방식이다.


묘수인가 꼼수인가

서울대의 이런 움직임은 오락가락하는 정부 대입 정책에 대응하는 성격이 짙다. 문재인정부 이전에는 고교교육 정상화를 이유로 정부가 수능의 힘을 빼는 쪽으로 움직였다. 주요 대학들도 실질적으로 선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수시 학종 비중을 늘려나갔다. 교사들도 학생부 비중이 올라가는 걸 선호했다. 정부 정책과 대학, 교사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자 주요 대학의 학종 비중은 급격하게 올랐다. 문재인정부가 수능 절대평가 공약을 내걸 때까지만 해도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문재인정부는 ‘역주행’을 벌인다. 교육부와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공론화위 등이 정책 떠넘기기를 하다 어정쩡한 ‘정시 30% 룰’(정시모집 비중을 30% 이상)로 간신히 봉합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특혜 의혹을 수습하는 과정에선 서울대 등 주요 16개 대학은 정시를 40% 이상으로 높이도록 했다.

학종 비중을 80%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서울대는 이를 60%로 낮춰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수능 최저기준 미충족 등으로 수시에서 정시로 넘어가는 인원까지 포함하면 40% 중반까지 정시 비중이 늘게 된다. 기존 수능 100%로 학생을 뽑으면 수능의 영향력이 대폭 강화된다. 명문대 입장에선 수능 영향력 확대가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수능 100%로 학생을 뽑는다면 대학이 뽑고 싶은 학생을 뽑는 게 아니라 학생이 자신이 획득한 점수에 따라 서울대 입학 권리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정시 40% 요구를 수용하되 학종 요소를 가미해 원하는 학생을 뽑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입시 정책의 난맥상 “해도 너무해”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서울대 발표 후 학생, 학부모의 상담 문의가 배 이상 증가했다”며 “예비 고교생 혹은 고2 대상 입시 설명회가 마치 수능 직후 이뤄지는 고3 대상 설명회 수준으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입시 불확실성이 커져 학생, 학부모의 불안감이 가중된 결과란 설명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해도 너무한다”는 반응이다. 문재인정부가 어설픈 수능 절대평가 공약을 내놔 흔들더니 정·수시 비율 논쟁을 붙여 혼란으로 몰아넣었고 가까스로 자리 잡은 ‘정시 확대’ 기조가 서울대 발표로 또 흔들리게 됐다는 설명이다.

현재 고2가 치르는 2022학년도부터는 새 수능 제도가 도입된다. 국어와 수학 영역이 공통과목과 선택과목으로 나뉘는데 선택과목의 난이도 차이 등에서 유불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지 모른다. 고1은 정부의 정시 확대 기조 속에서 고교를 선택했다. 서울대가 정시에서 학종 요소를 도입하는 상황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정상적으로 고교생활을 못 했다. 학교별로 코로나19 대응이 천차만별인데다 학생부 충실도 차이도 상당한 것이 현실이다.

정시 확대 기조에 맞춰 학습 플랜을 짰던 학생들은 서울대 외 다른 대학의 움직임에도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다른 대학이 서울대 방식을 따라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학종처럼 모호해진 서울대 정시 선발 방식에 대응해 수능 고득점자를 선점하려는 목적으로 수능 100% 정시를 확대하는 반대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중3의 경우 고교 선택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당장 다음 달 고교 지원을 앞둔 상태다. 이미 정부의 정시 확대 기조에 맞춰 고교 선택의 윤곽을 잡았다면 이번 서울대 발표로 흔들릴 수 있다. 초등학생의 경우 특목고와 자율형사립고 등이 일반고로 전환되고 고교학점제용 새 대입 제도라는 큰 변화가 예정돼 있다. 자사·특목고 폐지로 명문 학군을 선택하고 싶어도 부동산, 전월세 가격 상승으로 학군 이동에 따른 선택지도 줄었다는 평가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