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국희(75·여)씨는 3일 서울 서대문구 자신의 집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을 회상했다. 지난 9월 안방에 새로 들일 침대를 주문하던 날이었다. 근력과 시력이 서서히 퇴화되는 ‘중증 근무력증’을 앓는 몸을 눕힐 곳이 필요했다.
남씨를 돌봐주던 요양사와 그의 아들이 저녁 늦게 집으로 찾아왔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난치병 환자 혼자서는 침대를 주문할 수 없다는 걸 요양사 모자는 알았다. 아들은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뒤져가며 남씨가 상상하던 침대를 찾아냈다. 남씨는 “부탁한 것도 아닌데 먼저 도와준 모자에게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침대보다 사람이 더 포근했다.
서울시 돌봄SOS센터가 제공하는 ‘보편적 돌봄서비스’가 활성화되고 있다. 보편적 돌봄서비스는 돌봄 대상을 기존 치매·중증환자 중심에서 만 50세 이상 시민과 장애인으로 넓힌 서비스를 말한다. 지난 8월 서울 25개 전 자치구에 돌봄SOS센터가 설치됐다. 센터에서는 전문 요양서비스 기관과 연계해 일시재가, 주거편의, 식사지원, 건강지원, 안부확인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남씨처럼 장기요양등급을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몸이 불편한 이들이 수혜자다.
남씨의 병은 40년 넘게 천천히 진행됐다. 의식이 또렷하고 생리작용에는 문제가 없지만, 손발에 힘을 줄 수 없었다. 안검하수로 눈을 바로 뜨기가 어려웠고 말할 때마다 숨이 가빴다. 10여년 전 함께 살던 아버지가 작고한 뒤에는 집 안 청소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지저분해진 집안에서 남씨는 홀로 사라지고 있다고 느꼈다.
너무 힘들어 찾은 곳이 구청이었다. “누구라도 와서 도와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며칠 뒤 요양사 최효서(61·여)씨가 서글서글 웃으며 집으로 찾아왔다. 벌레가 다니는 집 안을 보고선 최씨는 먼지 쌓인 커튼부터 걷어냈다. 남씨는 깨끗해진 집 안을 보지는 못해도 마음으로 알았다.
남씨는 요양사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너무 가족처럼 생각하면 막 대할지 몰라 고른 호칭이었다. 요양사에게는 편한 대로 불러도 좋다고 했다. 요양사는 “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동생 같고 때론 엄마 같기도 한 요양사였다. 남씨는 “매번 평범한 얘기를 나눴지만 그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남씨는 요양사를 만난 뒤 “겨울잠을 자고 있던 마음이 깨어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팔자라고 느꼈던 외로움이 우울증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씨는 “얼른 더 좋아져서 여행도 가고, 책을 읽고 싶어졌다”며 “오랜 난치병을 치료할 수는 없겠지만, 극복할 수는 있겠다는 자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글·사진=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