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사의 표명’ 승부수를 던졌다. 정부 안팎에서는 당청이 정책을 계속 흔들자 ‘관료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행동으로 해석하고 있다. 홍 부총리도 사의표명 이유로 공직자의 도리를 꼽았다. 그러나 청와대가 곧바로 재신임 견해를 밝히면서 홍 부총리의 승부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관심이 쏠린다.
홍 부총리가 갑자기 사의 표명을 한 것은 청와대·여당과의 갈등, 여론 압박 때문이다. 당정청은 재산세 감면과 대주주 양도소득세 하향 조정을 놓고 이견을 보여왔다. 정부는 재산세 감면은 ‘6억원 이하’, 대주주 양도세는 ‘3억원 하향 조정’을 주장한 반면 여당은 크게 반발했다. 당정청은 최종적으로 1주택자 재산세 감면은 6억원 이하, 대주주 양도세 3억원 하향 조정은 유예하기로 했다.
홍 부총리는 대주주 양도세 유예 결정에 큰 상처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동안 기준 조정이 이미 2018년 결정됐고, 과세 대상이 전체의 1.5%에 불과하다고 추진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여야 모두 반대에 나섰다. 여론 또한 홍 부총리 해임건의안을 청와대 청원에 올리며 비판에 가세했다.
홍 부총리가 대주주 양도세 뜻을 고수한 배경에는 이미 한 차례 뒤집힌 금융세제 개편 영향도 있다. 정부는 지난 7월에도 2023년 주식 양도세 전면 도입을 발표했으나 당청의 반발로 공제 규모가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바뀌면서 ‘누더기 세법’ 비난을 받았다. 홍 부총리가 더는 물러날 수 없다는 ‘버티기’에 들어갔지만 대주주 양도세 조정까지 실패한 것이다.
이 외에도 올해 홍 부총리의 의견은 번번이 당청에 의해 묵살됐다. 1차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해 홍 부총리는 재정건전성과 효과를 고려해 선별 지급을 요구했다. 하지만 당청은 100% 전 가구 지급을 최종 결정했다. 2차 재난지원금에 대해서도 홍 부총리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지만 당청은 지급을 밀어붙였다.
재정준칙 문제도 있었다. 홍 부총리는 지난 10월 국가채무 비율이 치솟자 일정 수순으로 관리하는 준칙을 발표했다. 관가에서는 나라 곳간을 관리하는 기재부 수장으로서 국가채무 증가에 책임을 지려는 모습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여당은 시기에 맞지 않는 발표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홍 부총리는 개인적인 일도 논란이 됐다. 홍 부총리의 주택이 ‘임대차 3법’ 영향에 놓여 구설에 오른 것이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심적 부담이 컸을 수 있다.
따라서 홍 부총리가 ‘홍백기(白旗)’라는 별명이 나올 정도로 정부 판단이 정치권 앞에서 번번이 좌초되자 사직서로 행정부 수장의 소신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의 표명 후 “저한테는 정치라는 단어가 접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청와대가 바로 재신임을 말하면서 앞으로 당정청 논의에서는 홍 부총리의 소신이 고려될지 주목된다.
여당은 돌발 사의 표명에 당황한 모습이다. 홍 부총리를 겨냥해 과거 ‘같이 갈 수 없다’고 했던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엄중한 시기에 그런 입장을 말해 저도 참 당혹스럽고 아쉬움이 든다”고 했다. 민주당 소속 윤후덕 기획재정위원장은 “질문도 없는 상황에서 사의 표명 사실을 스스로 밝혀 위원들이 애써 준비한 정책 질의와 예산 심의를 위축시켰다”고 지적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이가현 기자 sgj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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