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택공급 확대 계획 중 하나인 ‘공공재개발’ 사업이 예상 밖의 인기를 끌고 있다. 민간 재개발로는 사업을 진행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지역이나 재개발이 무산됐던 정비해제구역들이 특히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 제외, 용적률 상향 등 정부가 내건 인센티브가 꽉 막혀있던 정비사업에 돌파구를 마련해 줄 거란 계산이 선 탓이다.
업계에 따르면 30곳이 넘는 서울시 정비사업지가 공공재개발 참여 사전의향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의향서를 제출한 사업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으로부터 컨설팅을 받아 각 관할 구청에 최종적으로 공모 신청서를 접수할 수 있다. 또 사전의향서를 제출하지 않았어도 동의율 10% 조건만 채우면 언제든 공모 신청을 할 수 있다.
정책 발표 초기엔 반응 시큰둥
공공재개발 계획 발표 초기에는 현장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리라는 우려도 나왔다. 공공재개발을 추진하는 단지는 전체 주택 물량의 20%를 공공임대로 채우게 하는 의무조항이 있는데, 일반 재개발에서는 임대주택 비율이 높아질수록 조합의 사업성이 떨어져 사업이 진행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공성이 강한 공적주택(공공임대, 민간임대, 지분형주택) 물량을 일반 재개발보다 늘리겠다는 취지에 민간이 호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공공재개발 사업지에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하면서 판세가 바뀌었다. 일반 재개발은 용적률이 최대 300%인데 공공재개발은 360%까지 허용됐다. 게다가 일반분양 물량 대비 기부채납 비율(20~50%)은 오히려 일반 재개발(50~75%)에 비해 낮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9월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께 계산한 모델에 따르면 공공재개발 사업 진행시 공적주택 물량과 일반분양 물량이 모두 늘었다. 공공임대 물량을 이유로 공공재개발을 마다할 이유가 없게 된 것이다.
사업 진행에 필요한 동의율을 75%에서 50~66.7%로 낮춘 것도 큰 인센티브였다. 공모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동의율도 낮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공모 신청에 필요한 동의율을 조기에 달성하고도 공모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각 조합에서는 벌써 동의율을 높이는데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각종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면서 기존에 10년 넘게 걸리던 사업을 공공재개발에서는 5년 이내로 줄일 수 있게 됐다. 일반 재개발에 도전했다가 오랫동안 조합을 설립하지 못했거나 지정 해제됐던 구역에는 가장 매력적인 인센티브다. 서울시는 총 531곳에서 정비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구역지정 후 10년간 조합설립에 실패한 곳이 102곳이고 사업 지연 등의 이유로 구역 해제된 곳도 176곳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재개발에 어려움을 겪던 지역에서 신청이 쏟아졌다. 서울 양천구 신월 7동은 노후화된 건물이 많고 저층 연립주택이 밀집한 지역이지만 그동안 재개발 사업이 진행조차 된 적이 없다. 심지어 2000년대 초반 서울 노후 주거지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뉴타운 사업 때도 신월동은 조용했다. 김포공항과 가까워 고도제한이 걸린 탓에 재개발 사업성이 극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주민들 “공공재개발에 희망”
이 지역 주민들은 최근 공공재개발에 희망을 걸고 있다. 공모를 앞두고 신월동 내 3700여 가구 중 600여가구로부터 공공재개발 사업 동의서를 받아냈다. 조자연 신월7동 공공재개발 1구역 주민 대표는 공공재개발 사업 신청에는 정비사업으로 인한 사업성보다는 지역 환경 개선에 대한 열망이 크게 작용했다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신월동은 15년째 지하철(목동선)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등 소외지역인데, 이참에 교통 등 여러 환경 개선에 탄력받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도 적극적으로 공공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창신동은 2007년 뉴타운 사업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사업이 지지부진해 2013년 구역 해제됐다. 이후 2015년 뉴타운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진행된 도시재생사업 1호 사업지로 선정돼 900억원이 투입됐다. 도시재생사업은 철거나 이주가 아니라 본모습을 살린 채 지역을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창신동은 지역 특화산업인 봉제 산업 등을 중심으로 도시 재생 사업이 진행됐다.
조합 설립 지지부진한 곳들도 관심
그런데 주민들은 도시재생 사업이 주민 생활환경을 오히려 악화시켰다고 주장한다. 강대선 창신동 공공재개발 추진위원장은 “도시재생 사업으로 봉제 박물관 만들고 전망대 만들었지만, 주민들의 삶은 전혀 개선해주지 못했다”며 “도로도 제대로 뚫리지 않아 소방차도 올 수 없는 상태로 방치되다 보니 젊은 층들은 점점 떠나고 노인들만 남았다”고 말했다.
이런 조건 때문에 이밖에도 성북1·5구역, 한남1구역, 흑석2구역, 장위 8·9·11·12구역, 아현1구역, 양평14구역, 금호23구역 등이 공공재개발에 관심을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비구역 해제지역과 조합 설립이 장기간 무산된 지역, 도시재생 사업지역 등이 두루 몰렸다. 공모 결과는 기존 정비구역은 12월, 신규지역과 해제지역은 내년 3월에 발표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 중 도시재생 사업 진행지역의 공공재개발 추진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됐던 지역은 공공재개발 검토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