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인데 뭔 처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어찌 하오리까

입력 2020-11-04 00:05 수정 2020-11-04 11:18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존폐 여부는 배드파더스, 배드페어런츠의 무죄 판결로 또다시 쟁점 사항이 됐다. 여러 공익적 활동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인해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형법 제307조 1항에 규정된 것으로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사실을 적시하는 것이 공익에 관련된 내용이라면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된다는 형법 제310조와 충돌해 논란이 이어졌다.

지난달 29일 배드페어런츠 운영자에 대한 무죄 판결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이 판결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관련이 없다고 명확히 했다. “검찰의 공소장에 신상공개 행위 자체는 포함되지 않아 이것이 적정한지 시비는 가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송기호 법무법인 수륜아시아 변호사는 3일 “통상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사건이 기소되면 재판부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서도 일부 기소되는 것으로 인정한다”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판결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 것은 재판부에서도 더 논의해봐야 할 문제라는 것을 시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미투운동이 시사했듯 사회적 약자들이 피해 사실을 공론화할 수 있는 통로가 협소한 현실을 내세운다. 손지원 사단법인 오픈넷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소송이 빈번하게 이뤄지면 언론사가 기업이나 정치인의 비리를 추적하고 보도하는 사회 고발 활동도 함께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소송이 진행되는 사이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희석시킬 수 있는 효과를 볼 수 있고, 본인의 행동을 교정할 동기도 점점 사라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간통죄가 사라졌다고 간통을 합법화한 것이 아니듯 설령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사라지더라도 무차별적인 사생활 폭로를 전면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헌재의 판단이 어떻든 간에 시민사회에서 그 취지를 잘못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폭로 대상이 공인(公人)인지 여부에 따라 법이 적용되는 정도를 달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공인의 비위에 대한 사실적시는 그로 얻는 사회적 권익이 매우 크다”며 “다만 어디까지 공인인지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이뤄져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최지웅 강보현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