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타다 사태’ 이후 기존 택시업계와 플랫폼 사업자 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플랫폼 운송사업자가 운행 건수당 800원의 기여금을 내도록 하고 이 기여금으로 택시업계를 지원하는 중재안을 내놓았다. 대신 플랫폼 운송사업자의 차량 허가 대수는 별도의 상한선을 두지 않았다. 플랫폼업계를 비롯해 모빌리티 시장에서는 “정부가 택시업계의 눈치를 보며 사실상 혁신을 외면했다”고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국토교통부는 3일 이런 내용을 담은 ‘모빌리티 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의 ‘모빌리티 서비스 혁신을 위한 권고안’을 발표했다. 혁신위는 지난 5월 교통, 소비자, 정보기술(IT), 법제 분야의 전문가 9명으로 구성돼 출범한 기구로 타다 사태 이후 모빌리티 서비스의 혁신 방안을 논의해 왔다.
이날 혁신위 권고안의 핵심은 우선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서 규정한 기여금 규모를 운행횟수당 800원으로 정한 것이다. 당초 플랫폼업계가 제안했던 운행횟수당 300원보다 2배 이상 높은 규모다. 일부 택시업계에서 플랫폼업계 기여금을 회당 1000원 이상 요구했던 것을 고려하면 정부가 택시업계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택시업계와 플랫폼업계 요구의 딱 중간치 정도로 보면 된다. 호주 등 유사 해외 사례도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플랫폼 운송사업자에게 운행 1건당 1호주달러(약 800원)의 기여금을 내게 하고 있다. 미국 뉴욕은 건당 운임료의 8.8%를, 샌프란시스코는 3.25%를, 매사추세츠주는 0.2달러(약 220원)를 기여금으로 내도록 한다.
혁신위는 대신 차량 허가 대수에 따라 기여금 부과율에 차등을 둬서 모빌리티 산업에 들어오는 스타트업의 진입 장벽을 낮췄다. 차량 300대 이상에 대해서는 운행 건당 기여금 800원을 내도록 하지만, 200대 이상~300대 미만은 그 절반인 400원을, 200대 미만의 영세 플랫폼업체에 대해서는 200원만 내도록 했다. 100대 미만 소규모 사업자는 2년간 기여금 납부 유예도 허용한다. 정부는 이 기여금을 모아 고령 택시 면허 반납 등 택시 고령화 해소와 택시 종사자 근로여건 개선 등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혁신위는 또 플랫폼 운송사업의 차량 총량 상한을 두지 않았다. 타다와 마찬가지로 렌터카 차량으로도 운송사업을 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뒀다. 하지만 “개별허가 심의 단계에서 국토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플랫폼 운송사업 심의위원회에서 허가 여부나 대수를 판단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 조항을 두고 모빌리티 업계에서는 혁신위 권고안과 달리 여객운수법 개정이 시행되는 내년 4월 이후 실제 정부 심의 단계에서 플랫폼 운송사업이 허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혁신과 소비자를 위한 경쟁은 실종되고 허가와 관리만 남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플랫폼 운송사업은 아직 국내에서 처음 해보는 사업인데 최소 1년 정도는 그냥 시행해보고 시장 반응과 매출, 수익구조 등을 살펴본 뒤 기여금 납부 방식을 논의했어야 했다”며 “기존 택시업계의 견제와 높은 기여금 납부까지 하고 신산업에 뛰어들 업체가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