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난이 극심한 가운데 전세 수요를 대체할 만한 서울의 저가 아파트값도 빠르게 치솟고 있다. 전셋집에 이어 저가 아파트까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서민의 주거 안정이 위협받는다는 얘기다. 3일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1분위(하위 20%) 평균 아파트값은 4억5638만원으로 새 임대차법 시행 직전에 비해 7.9% 올랐다. 같은 기간 5분위(상위 20%) 평균 아파트값이 4.0% 오른 것과 비교하면 저가 아파트의 가격 상승 속도가 2배가량 빠르다. 전세난을 피해 서울 외곽의 저가 아파트 매수에 나서는 수요가 많아져 가격이 치솟는 것이다. 전셋값 급등이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상황이 이런데도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전날 방송 인터뷰에서 “불편해도 기다려 달라”고 했다. 집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은 피가 마를 지경인데 이를 훨씬 사소해 보이는 ‘불편’으로 표현한 것이다.
청와대와 정부의 안일한 현실 인식은 전세난을 해결하기는커녕 가중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이번 전세난의 가장 큰 원인은 새 임대차법이다. 이 법이 시행된 후 3개월간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이 3756만원(7.5%) 올랐는데, 이는 그 직전 1년9개월간의 상승분과 맞먹는다. 200에 가까울수록 전세 공급이 부족함을 뜻하는 KB 전세수급지수는 지난달 전국 기준 191.1로 2001년 8월(193.7) 이후 19년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두 통계는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셋값이 급등했고 전세 매물의 씨가 말랐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청와대와 정부는 지금이 ‘과도기’여서 조금만 버티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김 실장은 “과거에 전세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릴 때 7개월 정도 과도기적 불안정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임대차 3법 등 급격한 시장 변화로 과도기가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3일 국회에 나와 “변화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안정될 것이라는 무책임한 태도다. 정부는 새 임대차법을 손볼 생각이 없다. 하지만 전세난을 부른 임대차법을 손질하는 것 말고는 당장 뾰족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대차 3법을 조기에 안착시키고 질 좋은 중형 공공임대아파트를 공급해 전세 시장을 기필코 안정시키겠다”고 밝혔다. 중형 공공임대아파트 공급은 단기 대책이 아니고, 임대차법의 조기 안착을 어떻게 이루겠다는 얘기는 없다. 그래서 공허하게만 들린다.
[사설] 전세난에 서민들 피 말라도 기다리라는 말뿐인 정부
입력 2020-11-04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