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살 때부터 기관지 천식을 앓아온 환자다. 38년간의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겨왔다. 그때마다 아내는 물심양면 정성껏 나를 돌봐 줬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사람은 바로 아내 박혜심 권사다.
나는 6남매의 장남이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경제적인 능력이 없으셨다. 나와 아내가 오 남매 동생들을 다 결혼시켰다. 아내는 불평 한마디 없이 그 큰일들을 잘 치러냈다.
처가는 소문난 부자였다. 밥 굶는 거지들이 아침저녁 동냥하러 처가 앞에 몰려왔다. 장인은 직접 이발기를 들고 이발도 해주고, 집 앞에 거지들을 부엌의 따뜻한 불 앞으로 데려와 음식을 대접했다. 할머니들이나 장애인들이 오면 안방을 내주고 밥상을 차려서 배부르게 실컷 먹도록 했다.
그때는 거지들이 다리 밑에 움막을 치고 살던 어려운 시절이었다. 장인과 장모는 명절이나 눈비가 오는 날이면 국과 밥을 한 솥씩 지어서 머슴들의 지게에 지워 그들의 움막으로 보내주곤 했다.
나누고 섬기는 가정에서 자라난 아내도 돈을 모으는 일보다는 나누는 일에 익숙했다. 자신도 거지들을 보면 지나치는 법이 없었고, 그들을 데려와 씻기고 먹여서 보내곤 했다. 아내는 교정선교뿐 아니라 청송군 여성봉사회 회장으로 12년간 청송군 8개 면의 무의탁 노인들과 장애인 가정을 섬겼다. 생일잔치는 물론 그들이 필요한 것을 찾아 불철주야 섬겨온 대단한 여장부다.
한번은 아내가 심하게 아팠는데, 당시 이의근 경북도지사의 사모가 직접 우리 집까지 문병을 와서 위로해줬다. 아내가 교정사역에 함께 했듯이 나도 늘 아내가 가는 곳에 동행했다. 운전사로만 따라다닌 것 같은데 그해 나는 경북도지사가 주는 외조상을 받았다. 사람들이 축하를 하며 “내조상은 들어봤는데 외조상은 처음 듣는다”며 놀리곤 했다.
38년 교정사역에 아내 박혜심 권사가 있었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아내가 없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교정사역을 시작할 즈음 동물병원과 우리 가정집은 한 곳에 있었다. 그곳에서 12년간 사는 동안 나는 한 번도 대문을 닫아 본 적이 없다. 출소자들이 자정이나 새벽에 시도 때도 없이 불시에 우리 집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그들을 안방으로 들여 따뜻한 밥을 지어 음식을 대접했다. 아내가 겪어온 어려움도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술에 취해 우리 집에 들어온 출소자가 욕설과 난동을 부릴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아내는 그들을 달래며 온갖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내가 가는 이 길에 동역자로 함께 걸어왔다.
이런 아내 덕분에 나는 2001년 법의 날에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고 아내는 2006년 10월 27일 국무총리상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