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요 신문사들은 지지하는 대선 후보를 공개적으로 밝힌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9월 28일 사설을 통해 예상대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WP 사설의 수위는 셌다. WP는 첫 문장부터 “최악의 대통령을 쫓아낼 수 있다면 많은 유권자들은 아무한테나 한 표를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그러고는 “다행스럽게도, 올해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유권자들은 기준을 낮출 필요가 없다”면서 “바이든 후보는 미국이 향후 4년 동안 직면할 도전을 대응하는 데 있어 훌륭한 자질을 갖췄다”고 치켜세웠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민주주의의 가장 심각한 위협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보다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처럼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반(反)트럼프’ 진영에겐 트럼프는 인종차별주의자이고, 성차별주의자이고, 외국인 혐오자다. 그러나 지지자들에겐 트럼프는 애국자이고, 썩어빠진 워싱턴 기득권 세력에 저항하는 투사다. 지난 9월 25일 트럼프 대선 유세장에서 만난 한 지지자는 “트럼프가 아니었으면 미국에서 더 많은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왔을 것”이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다른 지지자는 “트럼프는 내 일자리를 지켜주고, 미국·멕시코 국경을 통해 마약상이 넘어오는 것을 막아준다”고 떠받들었다. 특히 트럼프의 확고한 지지 기반은 ‘화난 백인 남성(angry white male)’이다. 고졸 이하 학력의 백인 남성 저소득 노동자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트럼프는 미국 정치에서 소외됐던 이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었다.
트럼프는 한국에도 두 얼굴의 사람이다. 트럼프는 세 차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면서 북한 비핵화가 외교로 가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처음으로 갖게 했다. 특히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북·미 정상회담 때는 한반도 평화가 손에 닿을 것만 같았다. 트럼프는 그러나 한·미 방위비 협상에선 돈밖에 모르는 장사치로 다가왔다. 트럼프는 지난해 한국이 부담했던 방위비 분담금(1조389억원)의 5배가 넘는 50억 달러(5조6800억원)를 요구했다. 이 협상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주한미군 감축까지 거론하면서 위협했다. 트럼프가 치적처럼 내세웠던 비핵화 협상도 멈춰 서 있다.
이번 대선 승패와 상관없이 트럼프가 미국을 더욱 분열시켰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대선 이후 폭력사태나 대선 불복,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실제로 높다. 이웃인 은퇴한 안과의사는 “어쩌다 미국이 이렇게 됐느냐”고 한탄한다. 며칠 전 간 식료품 매장엔 물과 음식 등이 크게 줄어든 모습이었다. 코로나19가 몰아치기 시작했던 지난봄 이후 두 번째 사재기가 시작된 것 같았다.
지난주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과 대선 이후 한·미 관계에 대해 인터뷰를 가졌다. 진보·보수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전문가들이었지만 대답이 일치했다. 북핵 문제에선 트럼프 당선이 우리에게 유리하고, 한·미동맹에 대해선 바이든이 낫다는 것이었다. 거꾸로 말하면 트럼프가 이길 경우 한·미동맹은 더욱 악화될 수 있고, 바이든이 당선되면 북핵 문제가 지지부진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과 한국을 동시에 흔들었던 트럼프의 4년이 끝을 향해 달려간다. 우리에겐 신기루와 국민적 분노가 뒤섞였던 시간이었다. 트럼프와 바이든 중 누가 이기든 미국 대선 이후 새로운 쓰나미가 몰려올 것이다. 하지만 전세 대란, 검찰 개혁 논란 등을 보면 우리 정부나 정치권이 미국발 해일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