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매대 판매와 뒷광고

입력 2020-11-04 04:02

한 인문 계간지를 창간한 이가 찾아왔다. 반응이 무척 좋단다. 우리 독자들이 수준 있는 정보에 매우 목말라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쭐한 기분으로 한 대형서점에 가서 유명한 철학 잡지 옆에 진열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서점 직원은 한 달에 50만원을 내면 해줄 수 있다고 말하더란다. 매대를 광고비를 받고 파는 것은 대한민국 독서가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일이 됐지만 이제 구석구석 속속들이 모두 파는구나 싶었다. 한 1인 출판사 사장이 자신도 드디어 그 대형서점 매대를 샀다면서 무척 기뻐했다. 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얘기를 들어보았더니 전문직에 종사하는 저자가 한 달에 300만원씩 두 달 동안 비용을 부담하기로 했단다. 신청이 조금만 늦었으면 그나마 매대를 살 수 없었을 것이었다나. 이제 책은 저자의 포트폴리오가 되기도 한다. 그 저자는 서점이 매대를 판다는 사실을 내 블로그를 통해 알았단다. 나는 잘못된 관행을 지적한 것인데 그게 역효과를 낳았다.

한 지상파 방송 기자가 찾아왔다. 자신들의 사이트에서 출판사들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해보겠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이른바 ‘뒷광고’였다. 인플루언서들은 광고비를 받고 책을 소개해주고도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감춘다. 최근 글쓰기에 대한 책을 펴낸 저자의 인터뷰를 올려주고 500만원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잠시 장사는 되겠지만 논란이 크게 터질 것이 우려됐다. 지금 방송은 PPL(간접광고)로 살아남기 위해 안달이 돼 있다. 인기 드라마는 상품 선전 매체로 전락했다.

상반기 최대 화제작인 ‘더 해빙’도 뒷광고 논란에 휩싸였다. 유튜브 구독자 수가 19만명을 넘는 ‘북튜버’가 울면서 간증하는 리뷰 영상을 올렸는데 이때 출판사로부터 광고비를 받았다는 사실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뒤늦게 비판이 제기됐다. 김미경TV의 ‘북드라마’에서 광고비를 받고 소개한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한꺼번에 진입한 사실은 만천하에 공개됐다. 출판사들은 김미경TV의 ‘간택’을 받으려 줄을 선다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독자가 신청하면 대형서점과 연계해 책을 거의 무료로 보내주는 마케팅 업체들이 성업 중이다. 부수가 한정됐다지만 명백한 사재기 행위다. 출판사는 바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릴 수 있기에 열심히 활용한다. 출판유통 시장이 그야말로 난맥상을 이루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지난 10년간 지역 서점 POS(판매정보 관리 시스템) 연계 구축 사업, 개방형 전자책 협업 시스템 구축 사업, 출판유통진흥원 도서 DB 구축 사업 등을 벌여놓고도 의미 있는 결과물을 전혀 내놓지 못했다. 최근 3년간 총 59억원이 배정된 출판유통 통합 시스템 사업 역시 예산을 거의 소진했음에도 지금까지 공식 서비스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출판사가 외면해 도서의 판매 데이터도 확보하지 못했다.

출판유통 통합 시스템이 곧 완료돼 시행을 앞두고 있다면서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의 대표를 불러 사진 찍으며 출판유통을 현대화하자고 뒤늦게 협약서에 사인했다. 또 출판사의 시스템 도서정보 입력을 법률적으로 강제하고, 이를 어길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이 포함돼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오로지 국가 예산을 허비하기 위해 술수만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설사 이런 시스템이 가동된다 해도 이것은 유통 현대화라는 큰 그림에서 아주 작은 유닛에 불과하다.

사태가 이럼에도 문화체육관광부는 출판 시장을 황폐화하는 도서정가제 개악에만 열을 올렸다. 우리 출판이 망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오로지 양식을 가진 출판인들의 피나는 노고에 힘입은 바 크다. 문체부는 출판 진흥을 말할 자격이 없다. 그들이 이제라도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들러리 서기를 멈추는 게 그나마 출판 진흥의 첩경이라는 것을 명심해줬으면 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