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당일 아침, 작은딸이 자취하는 방에 함께 모여 가정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 아버지, 부조는 얼마가 되든지 좋은데 제발 하객들이나 가득 채워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예배를 마친 뒤 큰딸은 나에게 “무슨 기도를 그렇게 하시느냐”며 핀잔을 줬다.
결혼식 시간이 돼 식장으로 향했다. 대구 동부교회는 지역에서 제일 큰 교회였다. 1000명 넘게 수용할 수 있는 교회였다. 딸의 결혼식에 앞서 같은 장소에서 다른 장로님의 자제분 결혼식이 진행됐다. 150여명의 하객이 왔다. 나는 걱정이 앞섰다.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교정 사역하느라 저는 주변의 경조사를 챙기지 못해 우리는 150명보다 훨씬 적게 모일 텐데요.’
결혼식이 진행됐다. 신부를 데리고 입장을 한 뒤 혼주석에 앉아 눈을 꼭 감고 있었다. 텅 빈 결혼식장을 바라보기가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주례 목사님이 “혼주는 일어서서 결혼식에 참석한 분들에게 환영 인사를 하라”고 했다. 갑작스럽게 인사를 시키는 목사님 말씀에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을 뜨고 뒤를 돌아 인사하려는 순간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1000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좌우 양쪽으로 한 줄씩만 비어있고 하객으로 꽉 차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하객들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봤다. 전국으로 흩어졌던 출소자들과 교도관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미력하나마 주의 일을 감당하며 교정선교의 일선에 있는 저를 위한 하나님의 소리 없는 박수로 알고 이제부터 더 열심히, 더 뜨겁게 갇힌 자와 풀린 자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결심했다.
감사하게도 나의 두 사위도 자기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있다. 첫째 사위 이승익은 내과 의사다. 그는 마산역에서 노숙하는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잠을 잘 수 있는 숙소를 마련해 주고 금요일마다 모여 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둘째 사위 김상신 교장은 방황하는 학생들을 음악으로 치유하는 대안학교를 세웠다. 일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기도와 말씀, 음악으로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변화돼 가는 모습을 보며 큰 보람을 느낀다.
섬기고 베푸는 곳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흐른다. 그곳에선 아름다운 꽃이 피고 향기가 난다. 내 어머니의 긍휼함이 내게 대물림되더니 이젠 내 자식과 사위들에게까지 대물림되고 있음을 본다. 이런 사랑이 손주들까지 계속 대물림될 것들을 기대하는 내 마음은 참 기쁘고 감사하다. 한 사람이 뿌린 신앙의 씨앗이 이렇게 소중할 줄이야. 오래전 천국으로 가신 내 어머니가 오늘따라 몹시도 그립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