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또 도진 금융 협회장 낙하산… ‘모피아 규제’ 어디 갔나

입력 2020-11-03 04:02
전국은행연합회, 손해보험협회, 생명보험협회 등 금융 관련 협회의 차기 회장에 전직 관료들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2일에는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전날 임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차기 손해보험협회장으로 내정되는 이례적인 일도 있었다. 정 이사장은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과 상임위원을 거친 관료 출신이다.

공석이 된 한국거래소 이사장에는 금융위 고위 관료가 사실상 내정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은행연합회도 최근 이사회를 열고 차기 회장 추천 절차에 들어갔는데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과 민병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달 중에 차기 회장을 결정해야 할 생명보험협회장 자리에도 전직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한 금감원 간부와 금융위 관료 출신, 정치인 등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 관련 협회의 기본적 성격은 이익단체다. 협회장들은 회원사의 이익을 위해 국회나 금융정책·감독 당국을 상대로 로비를 하는 게 주 업무다.

이런 ‘로비스트’ 자리에 금융규제정책과 금융감독을 책임졌던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볼썽사납다. 취업 제한 시기가 지나는 등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지만, 그렇게만 볼 게 아니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최고 책임자들이 자신과 함께 근무했던 후배들이 포진한 금융위나 금감원을 상대하는 로비스트 역할을 맡는 건 정상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과 금융감독이 될 리 없다.

상당수 고위 금융 관료 출신들은 안정적인 공무원 연금 소득이 있는 데다 김앤장 등 로펌의 고문을 맡는 경우가 많다. 일부는 대기업 등의 사외이사로 퇴직 이후에도 수입을 올린다. 일부 관료 출신들이 아직도 군림하던 경제개발 시대의 관료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착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줄어든 일자리와 코로나 사태 영향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는 많은 국민은 허탈할 뿐이다. 금융계 경험도 없는 정치인이 논공행상을 거론하며 금융 관련 협회장 자리를 기웃거리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모피아(금융관료+마피아의 합성어)의 금융권 낙하산을 규제하겠다던 문재인정부의 약속은 벌써 공수표가 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