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다 사람이 하는 일… 앞으로 예능도 인물 중심 만들 것”

입력 2020-11-03 04:07 수정 2020-11-03 04:07
최근 화제 속에 막을 내린 tvN 예능 ‘식스센스’를 만든 정철민 PD. 2010년 SBS에 입사한 그는 ‘런닝맨’의 부흥을 이끌었고, 시골 스릴러 예능 ‘미추리’를 만들었다. 올해 초 tvN으로 이적한 뒤 선보인 첫 작품이 ‘식스센스’다. tvN 제공

요즘 예능은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다. 모든 나이대가 볼만한 예능을 만들면 어떨까. 뻔한데 안 뻔한, 익숙한데 참신한 포맷을 만들면 어떨까. SBS 대표 예능 ‘런닝맨’의 부흥을 이끈 정철민 PD가 올 초 tvN 이적 후 첫 작품을 기획하면서 했던 고민들이다. 정 PD 특유의 쫀쫀한 관계성을 기반으로 한 인물 중심 포맷에 요즘 예능의 리얼 버라이어티 요소를 접목했고, 2000년대 초반 SBS ‘진실게임’으로 전성기를 맞았던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고전적인 소재를 큰 틀로 가져갔다. 젊은 콘텐츠가 많았던 tvN에서 전 연령을 타깃으로 하는 쉬운 버라이어티 예능의 탄생. ‘식스센스’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종영을 앞두고 서울 마포구 tvN 본사에서 만난 정 PD는 “요즘 버라이어티는 세계관이 어렵다”며 “엄마도 볼 수 있는 예능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9월부터 8주간 달려온 ‘식스센스’ 시즌1의 포맷은 간단하다. 여섯명의 출연진이 진짜 속 숨어 있는 가짜를 찾는다. 가성비 끝판왕 ‘한판 치킨’, 극강의 맛을 자랑하는 ‘초코 치킨’, 로봇이 튀겨주는 ‘미래형 치킨’ 중 가짜 식당을 찾는 식이다. 정 PD는 “중장년층은 아직 TV로 예능을 보고, 청년층은 SNS에서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으로 소비한다”며 “두 타깃을 다 노렸다. tvN에서도 편한 버라이어티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을 주면서, 멤버 간 케미로 밈 코드를 넣었다”고 설명했다.

정 PD의 예능 문법에서 핵심은 인물 간 호흡이다. 상한가를 달리는 오나라·전소민·제시·미주를 중심에 놓고 국민 MC 유재석으로 무게감을 더했다. ‘런닝맨’으로 인연을 맺은 유재석은 “새 예능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정 PD는 “유재석씨 입장에서는 굳이 이 시기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는데 고맙게도 손을 잡아줬다”며 “뻔한 걸 싫어하는 성격이 나와 똑 닮아서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상엽, 황광희, 장동윤, 차태현 등 매주 한 명씩 초대된 게스트는 티키타카(호흡이 잘 맞아 빠르게 주고받는 대화)를 더 탄탄하게 만들었다. 이때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투박한 게임이 빛을 봤다. ‘세 글자씩 말해요’ ‘동물 의성어로 단어 설명하기’처럼 별도의 소품 없이 좁은 공간에서도 할 수 있는, 유치하지만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게임들이다. “게임은 메인 소재가 아니에요. 출연진 호흡을 위한 도구적 성격을 지니죠. 거창하지 않아도 충분히 큰 재미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고 소소한 웃음을 사랑하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상황은 여러 제약을 만들었다. 이때 정 PD의 유연함이 발휘됐다. 정 PD는 “작은 부주의로 큰 걸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며 “큰 건물이나 도심 속 식당에 찾아갈 수 없어 예정된 촬영을 취소하고 급하게 안전한 장소를 섭외했다”고 말했다. 4회 ‘특이한 글로벌 운동법’ 편은 이런 고민의 결과물이다.

‘식스센스’ 시즌2를 비롯해 정 PD가 앞으로 만들 모든 예능은 인물 중심으로 전개될 예정이다. “탐험가 기질이 있는 PD는 아니에요. 인물과 관계에 천착하죠.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는 요리사보다 최고급 식재료로 트렌드에 맞는 음식을 내놓는 요리사를 꿈꿉니다. 결국엔 다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