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도 당헌 개정 동의하나

입력 2020-11-03 04:01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 위한 당헌 개정 속도전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2일 당무위원회를 연 데 이어 오늘 중앙위원회에서 당헌 개정안을 확정한다. 전 당원 투표 결과에 따른 예정된 수순이다. 민주당이 지난달 31일과 지난 1일 이틀간 실시한 권리당원 투표에서 86.64%가 당헌 개정 및 보선 후보 공천에 찬성했다고 한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었고, 전 당원 투표는 요식절차였다. 후보 공천은 일반 여론을 반영하면서 민주당 귀책사유로 실시되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공천 여부를 일반 여론을 배제한 채 당원에게만 물은 자체가 설득력이 없다.

더욱이 전 당원 투표는 무효다. 민주당 당규상 전 당원 투표 성립 유효투표율은 3분의 1 이상이다. 그러나 이번 전 당원 투표 최종 투표율은 26.35%로 유효투표율에 한참 미달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당규에 규정된 조항은 권리당원 청구로 이뤄지는 투표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번처럼 지도부 직권으로 실시되는 투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해괴한 논리를 폈다. 민주당에 당의 기본 규율을 규정한 당헌과 당규는 한낱 장식품에 지나지 않은 듯하다. 당헌은 바꾸면 되고, 당규는 무시하면 된다는 식이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당헌 96조 2항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만든 조항이다. 당시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정치 개혁의 가늠자’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2015년 10월 새누리당 귀책사유로 치러진 경남 고성군수 재선거 때 “새누리당은 후보를 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었다. 이랬던 문 대통령의 정치 개혁 인식이 바뀐 것인지 국민들은 궁금하다. 인식이 바뀌었다면 경위를 설명하고 국민에게 사과와 더불어 양해를 구하는 게 맞는다. 과거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대통령을 믿어 달라고 하는 건 이율배반이다. 이낙연 대표의 사과로 갈음할 성질의 사안이 아니다.

민주당이 당헌을 바꿔 기어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겠다면 막을 방법은 없다. 이 대표는 “철저한 검증, 공정 경선 등으로 가장 도덕적으로 유능한 후보를 찾아 유권자 앞에 세울 것”이라고 했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국민 세금 838억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안 써도 될 국민들의 피와 땀이다. 결국 판단은 시민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