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 인생에서 배격해야 할 ‘오적(五賊)’ 중 하나

입력 2020-11-04 03:06
애틀랜타 새한교회 주일학교 교사들이 지난 6월 미국 조지아주 교회 주차장에서 개최한 ‘주일학교 드라이브 스루 페스티벌’에서 어린이들에게 보낼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이 말씀을 읽으며 도대체 어떻게 마음의 근심이 뼈를 마르게까지 하는지 놀라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 도처에 마음의 근심으로 인해 뼈가 마르는 정도를 넘어 극단적 선택까지 하는 사람이 속출하는 게 현실이다. 근심은 그 정도로 무서운 것이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 4:10)

야베스가 기도에서 마지막으로 구한 것이 무엇인가. 근심을 없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근심은 마음 항아리를 금 가게 하며 심지어 깨기도 한다. 항아리가 깨지면 무엇을 담아도 다 새어나간다. 그래서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복을 잘 감당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근심이 있으면 아무리 많은 복을 받아도 새어나가 종국에는 인생에 유익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 중에도 야베스의 경우처럼 반드시 이 기도가 들어가야 한다.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우리는 왜 근심이 없기를 기도하며 근심을 몰아내야 하는가. 근심은 뼈와 면역항체를 마르게 해서 건강을 망가트린다. 근심은 만병의 원인인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건강만 망치는 게 아니라 심령을 상하게 한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13) 이 말씀대로 근심이 마음의 행복과 감사와 기쁨을 사라지게 한다.

또한, 근심은 말씀이 뿌리내려 결실하는 것을 방해한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눅 8:14)

근심과 염려는 내 마음에 들어온 말씀의 기운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하는 주범이다. 믿음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근심을 물리쳐야 한다.

또한, 근심은 예수를 떠나 돌아서게 만들기도 한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 19:22)

부자 청년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네 재물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돈이 많은 부자 청년은 근심하며 주님으로부터 떠났다. 왜 그가 예수님을 떠났나. 돈이 많아서인가. 근심 때문인가.

꼭 돈이 많아서 떠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부자도 많다. 삭개오, 아리마대 요셉, 니고데모, 마가의 모친 등은 모두 큰 부자였지만 예수님을 따랐다.

문제는 돈이 많은 것이 아니라 근심이다. 근심은 우리를 예수님으로부터 떠나게 만드는 주요한 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영적 생활을 위해선 근심을 물리쳐야 한다.

세상 근심은 사람을 죽고 망하게 하는 원흉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세상 근심은 영적인 사망을 불러온다. 영적으로만 죽는 것이 아니라 육적으로도 희망을 보지 못하고 죽게 만든다.

근심은 인간 스스로 해결해 떼어낼 수 없다.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잠 14:13) ‘웃음과 즐거움 끝에도 근심이 있다’는 말이 얼마나 절실하게 와닿는지 모르겠다.

재벌, 배우, 연예인들이 매일 파티를 하며 웃고 즐기는 것 같지만 그 끝에는 근심이 있다. 그래서 외면적으론 아무 근심이 없는 것 같은 그들 가운데에서도 자살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잠 23:29~30)

이 구절에 근심과 재앙, 분쟁이란 말이 나란히 같이 나온다. 근심은 술로, 술은 분쟁으로, 분쟁은 재앙으로 악순환된다. 근심을 달래기 위해 술, 특히 혼합된 칵테일을 찾아다니지만, 근심을 잊어버리기는커녕 더 악화시킨다.

근심은 백해무익하다. 근심과 염려는 믿음을 파괴한다. 근심은 천국을 누리게 하는 감사를 없애버린다. 근심은 기도를 막히게 만든다. 근심은 욕심, 교만, 나태, 불신과 함께 인생에서 배격해야 할 오적(五賊) 가운데 하나다.

근심은 내 마음에 들어온 행복과 믿음, 말씀과 희망을 모두 변질하게 만든다. 근심이 있으면 누구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없다. 근심을 없애야 하는데 인간의 힘으로 안 된다.

우리는 ‘근심’에게 영주권을 줘서 정착시키지 말고 당장 추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운동해야 한다. 몸을 많이 움직이며 운동하면 혈액순환과 호르몬의 분비가 좋아져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미국의 도시마다 마약 중독자들을 치료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중에 지치도록 운동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가장 효과가 좋다고 한다.

송상철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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