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민의힘 ‘제2의 이인제’ 기다리나

입력 2020-11-03 04:05

국민의힘이 하고 있는 정치는 참 쉽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일정이 잡히자 후보 담론이 무성해진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월권’ 논란이 일자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어 말을 보탠다. 매일 아침 당직자 회의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당일 주요 뉴스에 대한 그저 그런 반응이다. 이어 언론의 픽(pick)을 바라는 의원들이 SNS를 통해 또 그저 그런 변주를 쏟아낸다. 지도부와 구성원들의 시선은 바깥으로 쏠려 있다. 편승(便乘·free-riding) 놀음이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사람의 뇌는 시스템1과 시스템2로 구성돼 있다고 했다. 전자는 에너지가 거의 쓰이지 않는 직관, 후자는 금세 머리가 뜨거워지는 분석·계산·통찰의 영역인데 사람들은 일상의 대부분을 시스템1에 의지해 살아간다고 한다. 인간은 본래 새로운 사실을 알고 숙고하기를 싫어하는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주로 사용하는 머리는 시스템1이 틀림없다. ‘조건반사’ 정치라서 그렇다. 대여 투쟁에 항상 많은 의원이 덤벼들 필요가 없다. 사안에 따라 역할을 분담해 집중하면 얼마든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럼에도 매번 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것은 지지자들에게 생색내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자극적으로 들려주면서 지역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걸 교통 정리할 리더십도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한동안 귀 기울였던 사람들도 쳇바퀴 도는 소리가 지겹다고 한다.

이 당의 차기 정권 탈환 전략은 무엇일까. 지금 장면이라면 감나무 아래에서 감 떨어지기를 바라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혹시 지지율 1, 2위를 달리는 여당 후보들의 분열에 따른 ‘제2의 이인제’를 기다리고 있나? 아니면 윤석열? 그간의 느긋한 행태를 볼 때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미증유의 총선 참패 후 반년 이상이 흘렀지만, 이 당은 이름 말고는 달라진 게 없다. 그들의 정치는 수동적이고 즉자적이며 위험 회피적이다. 이런 풍토에서 혁신은 구두선이다. 이래서 탄핵 때 이탈한 ‘유랑보수’와 중도를 다시 붙잡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이 당은 내부가 늘 조용하다는 점이다. 변화가 일어나려면 경쟁과 갈등이 필수인데 무얼 적극적으로 해보자는 사람도 안 보이고, 뾰족한 의제를 내놓는 사람도 없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취임했을 때 그런 역할을 기대했지만 그 역시 ‘무난한’ 행보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주력해야 할 것은 변화를 향한 내부 투쟁이다. 정치든 정책이든 국가운영 방향을 둘러싼 노선투쟁이 불꽃을 튀겨야 한다. 보수가 재집권한다 해도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불가능하다. 따라서 급변한 현실에 부합하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보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실력과 열정을 보여야 한다. 당의 혁신은 진작부터 여기에 초점이 모아졌어야 했다. 이를 통해 후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순서다. 당내 모든 희망자에게 상시 비전 발표와 토론의 장을 제공해 그들의 실력을 평가하고 이슈를 주도하는 이벤트도 고려할 만하다. 이 과정에서 시장 후보든, 대선 후보든 실력이 확인된 사람이 떠오를 수 있다.

당장의 후보 지지율을 놓고 갑론을박하며 밖을 기웃거리는 것은 경박하다. 때 이른 경선 방식 운운도 선후가 바뀐 발상이다. 당과 후보의 실력을 인정받는 게 우선이다. 중도층 공략의 열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선거공학과 기술도 이런 토대 위에서 비로소 힘을 받을 수 있다. 공학과 기술로만 본다면 보수는 진보를 당할 수 없다. 선전과 이미지가 주인이 돼버린 정치판이지만, 그럴수록 보수는 실력이다.

유성식 수원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