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지난해 4월 태아를 모체와 독립된 생명을 가진, 발달과정에 있는 인간으로 보지 않고 일정 주수 미만의 태아는 여성 신체의 일부로 봤다. 그리고 낙태를 처벌할 수 없다며 태아 살인에 대한 면죄부를 준 참담한 결정을 한 바 있다. 반면 헌재는 지난 6월 내부 리모델링 공사 중 천장에 있는 직박구리 알을 발견하고 새끼 새가 알을 깨고 날 수 있을 때까지 공사를 중단한다는 결정을 통해 힘없는 미물인 새끼 새의 생명도 소중함을 알려준 바 있다.
이 모순되는 장면이 지난해와 올해 실제 대한민국 헌재에서 일어난 일이다. 인간의 태아가 직박구리 알보다 가치가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직박구리 알은 2주만 참으면 태어나 떠나갈 존재이지만, 인간인 태아는 20년간은 성장해야 하기에 부담스러운 존재라서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자연법보다 자신의 이성으로 생명의 시기와 종기를 정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교만함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올해 말까지는 낙태죄와 관련된 형법을 개정해야 함에도 정부는 헌법불합치 결정 후 1년 6개월이 지난 10월 7일에서야 형법과 모자보건법 일부개정안을 내놓았다.
형법 개정안에는 임신 14주까지는 이유 불문 낙태가 가능하고,(안 제270조의2 제1항) 임신 24주까지는 국가가 지정한 상담기관에서 상담을 거치면 24시간 후 낙태가 가능하도록 했다.(안 제270조의2 제2항) 사실상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전면 허용한 것이다.
더욱이 모자보건법에서는 미성년자의 경우에도 부모의 동의 없이 낙태가 가능하도록 해서(안 제14조의2 제2항)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모의 보호양육권과 친권을 박탈하고 있다. 법정대리인의 동의권과 같은 미성년자 제도의 취지 자체를 무너뜨리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모자보건법을 통해 수술이 아닌 약물로도 낙태할 수 있도록 해서 오히려 여성의 건강에 더 치명적일 수 있게 된 점이다.(안 제2조 제7호)
정부 개정안에는 약물 낙태의 주체·방법·시기 등에 관한 구체적인 제한이 없기에 산부인과 의사가 아닌 모든 의사에 의한 약물 낙태의 처방이 가능하게 된다. 이로 인해 약물 낙태 합병증에 대한 추후 경과 추적과 긴급수술 등의 대응이 어려워져 여성의 건강권이 침해받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또한, 여성들이 수술방식의 낙태보다는 불법유통 경로로 구한 약물로 낙태를 비밀리에 진행할 가능성이 크기에 약물 낙태의 남용을 막을 제도적 정비도 필요하다.
모자보건법 개정안에서는 임신 14주 이후 낙태 시 상담절차를 의무화하면서 상담기관의 지정권자를 보건복지부 장관 이외에 지방자치단체의 장까지로 확대했다. 의료법인뿐 아니라 비영리법인도 상담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함에 따라 상담절차는 요식행위가 되고, 상담사실 확인서의 발급기능에 머물 단체들의 출현이 예상 가능하다.(안 제7조의 3 내지 4)
더욱이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명을 다룰 상담자에 대한 구체적인 자격요건 규정은 없고, 성범죄자도 예외적으로 상담자가 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은 국민 대다수의 정서에도 반한다.(안 제7조의5) 이러한 문제점들로 인해 입법시한에 쫓겨 내놓은 졸속개정안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듯하다.
일부 여성단체가 위와 같은 정부의 개정안조차도 기만적인 법안이라며 반발하자 한 여성운동가 출신 국회의원은 낙태죄 전면폐지를 위한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낙태죄 조항의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을 인정한 헌법불합치 결정의 취지에도 반하는 것으로 이념에 갇힌 주장일 뿐이다.
2018년 기준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OECD 37개 국가 중 0.98로 37위다. 2019년은 0.92로 역대 최저였다. 인구절벽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여성이 임신 지속으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따른 곤경에 빠져 낙태를 선택하지 않도록 할 국가의 배려와 보호 의무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우리 사회 또한 출산이 국가의 존속과도 결국 연결된다는 점을 깨닫고 출산을 개인 선택의 영역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 가치 없는 존재는 없다. 인간의 존엄성은 그 어떤 명목으로도 훼손되어서는 안 되며, 인권은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생명이 있을 때 논의가 가능한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도 모친이 낙태하지 않았기에 존재하며 지금의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없는 약자인 태아의 소리 없는 외침이 들리지 않는가. 자신을 태어나게 해 달라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달라는 외침 말이다. 그들의 외침을 외면한 낙태죄 개정안은 세상에서 가장 약한 생명에 대한 국가의 차별행위이다.
약력=성균관대 법학과 졸,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사. 현 법무법인 추양 가을햇살 변호사, 한국순교자의소리 감사, 복음법률가회 실행위원, 한국기독문화연구소 사무국장.
[태아는 사람 낙태는 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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