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혁신 당헌 조항’은 사라질 운명인가 보다. 1일 민주당 당원 투표를 마치고, 2일 오전 최고위원회의를 거쳐 결과가 발표된다. 이 조항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였던 2015년 ‘김상곤 혁신위’가 도입했다. 당의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치르게 된 선거엔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당헌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지도부가 대선을 한 해 앞두고 진행될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 공천을 하리란 건 예상된 바이나 아쉬움이 크다. 만약 민주당이 공천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눈 앞의 자리는 포기해야 할지 몰라도, 당의 혁신을 위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집권 여당임을, 말로만 여성을 위하는 정당이 아님을 입증할 수 있었을 테다.
무엇보다 한국 정치 전체를 놓고 보면 ‘집권 여당이 후보를 내지 않는’ 내년 4월 보선은 유례없는 정치 실험장이 될 수 있었다. 정치의 혁신은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결코 평시에 이뤄지지 않는다. 정치적 상상력이 유난히 부족하고, 진입 장벽이 높아 세대교체나 신진 세력의 등장이 어려운 한국에선 더욱 그렇다. 정당도, 시민도 처음 겪는 정치 상황이야말로 새로운 정치가 태동하는 기회가 된다.
민주당 후보가 없는 정치 공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정의당을 필두로 진보 정당의 고민은 깊고 또 커졌을 테다. 정의당의 선택은 늘 후보로만 뛰다 끝나던 때와 질적으로 달라질지 모른다. 정치권 밖 시민사회 진영에서 여성이나 2030세대를 대표하는 새로운 얼굴들이 도전장을 내밀기도 좀 더 수월할 것이다. 새로운 세력의 등장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선거를 통한 민주당의 외연 확대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그랬던 것처럼 민주당이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키우지 못하는 세력이 선거를 통해 민주당에 새롭게 결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제3의 세력, 중도층의 현실 세력화가 이뤄질지도 모른다. 지난 4월 총선으로 탄생한 거대 여당이 대통령 지지율에 기대어 ‘내로남불’과 ‘편 가르기’를 일삼는 모습에 실망한 중도층이 적잖은 상황이다. 민주당을 뛰쳐나온 금태섭 전 의원 같은 이들이 과거 회귀적인 이슈 대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한 미래 비전 등을 앞세워 실체 없는 중도층의 결집을 이뤄낼지도 모를 일이다.
보수 진영에는 새로운 혁신의 기회다. 선거를 앞두지 않은 정치 세력이 자발적으로 혁신하는 모습을 이제껏 보지 못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에서도 자기 혁신에 지지부진한 국민의힘이 이 명제를 다시금 입증한다. 민주당 후보 없이 ‘야당 주자=본선 승리’ 등식이 성립하면 국민의힘 내부 경선이 보수 혁신의 경쟁장이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물론 서울시장을 지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그림자까지 제대로 걷어낼 진짜 ‘뉴라이트’의 탄생 같은 것이 이뤄질지도.
양당의 경쟁이 아닌 새로운 지형에서의 선거는 인물뿐만 아니라 선거운동과 캠페인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여러 면에서 ‘어제까지의 선거’와 다른 새로운 선거를 경험해볼 기회가 민주당 혁신 조항과 함께 사라져가고 있다. 민주당이 곧 내릴 결정은 국민과의 약속, 책임정치를 저버린 것일 뿐 아니라 정치 혁신의 기회도 포기한 것이다. 그 결정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김나래 정치부 차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