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임대차법이 시행된 지 3개월 만에 전국의 전세난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제도 시행 이전 전문가들이 경고했던 거의 모든 부작용이 시장에서 차례대로 벌어지는 모습이다. 전세 매물 부족은 19년 만에 최악으로 치달았고, 전월세 가격 상승에 따른 주거비 부담도 커지고 있다. 전세난이 조기에 잡히지 않으면 매매시장에 대한 상승 압력으로 연결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KB국민은행이 발표한 10월 ‘월간 KB 주택시장 동향’에 따르면 전국의 전세수급지수는 9월(187.0)보다 4.1포인트 상승한 191.1로 집계됐다. 이는 2001년 8월 193.7을 기록한 이후 19년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전세수급지수는 1∼200 사이 숫자로 표현되며 수치가 높을수록 전세 공급 부족을, 낮을수록 수요 부족을 뜻한다.
KB의 전세수급지수는 올해 1∼4월에는 150선이었다. 5월에 160, 6월에는 166.5를 기록했고 7월에는 169.2를 기록했다. 이런 상승세를 놓고 전세난이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이 시행된 7월 31일 이전에 이미 심각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적어도 전세수급지수만 보면 7월 말을 전후로 차원이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새 임대차법이 시행된 8월에는 전세수급지수가 180.5로 치솟았고, 9월에는 187.0, 10월에는 191.1로 계속 상승했다.
특히 수도권 상황이 심각했다. 서울의 10월 전세수급지수는 191.8로 전달(189.3)보다 2.5포인트 올라갔는데, 2015년 10월(193.8)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였다. 수도권도 194.0으로 2013년 9월(195.0) 이후 7년1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고, 경기도는 195.7로 집계돼 KB국민은행이 이 조사에서 경기도 통계를 따로 추출하기 시작한 2003년 7월 이후 최고치였다. 8월 이후 전세난의 실체와 원인에 대한 이견은 끊이지 않지만 적어도 이처럼 매물이 급격히 줄고 있다는 통계는 계속 발표되고 있다.
전세 매물이 급격히 줄어드는 동안 신규 매물 중 월세 비중은 꾸준히 늘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지난 7월 31일 3만8427건이었다가 1일 현재 1만1253건으로 줄었다. 월세 매물도 같은 기간 2만3340건에서 1만896건으로 줄었지만, 전체 전월세 매물에서 월세 비중은 급격히 늘었다. 그 사이 월세 가격은 뛰었다. KB국민은행의 월간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10월 서울 아파트 월세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0.78% 급등해 해당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6년 1월 이후 4년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도권 월세 상승률도 10월 0.67%로 역대 최고치였다.
새 임대차법이 전세와 월세 시장에 일부 부작용을 일으킬 거란 우려가 곳곳에서 사실로 드러나면서 장기적으로는 매매시장에도 연쇄적인 부담을 줄 거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한국감정원이 지난 29일 발표한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은 서울 중랑구와 관악구가 각각 0.03% 상승했다. 금천(0.02%) 강서(0.02%) 노원(0.02%) 등 다른 외곽 지역의 상승세도 서울 평균보다 높았다. 적당한 전세 매물을 찾지 못한 세입자들이 무리해서 서울 외곽 매물을 사들이면서 매매 시장 상승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