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교회를 향한 세상의 비난이 도를 넘어서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의 자숙과 회개도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세상의 시선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믿음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평상시에는 성숙한지, 미성숙한지를 모릅니다. 믿음은 문제를 만날 때 진가를 드러냅니다. 성숙한 믿음과 미성숙한 믿음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믿음은 귀로 듣는 단계도 중요하지만, 직접 눈으로 본 하나님을 말하고 간증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눈으로 보는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로 정탐꾼을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정탐꾼은 기생 라합의 집에 유숙하다 정체가 발각됩니다. 군사들이 집을 포위하고 라합에게 정탐꾼을 내놓으라 하자, 라합은 정탐꾼을 지붕에 숨겨 그들을 살립니다. 라합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위해 역사하셨는지 들었기 때문입니다.(10절) 사실 하나님에 대한 소문은 여리고에 있던 모든 사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라합만 정탐꾼을 숨겨주었을까요.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소문을 귀로만 들었지만 라합은 믿음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라합처럼 눈으로 보는 신앙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여리고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그들을 대신해 싸운 일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라합은 귀가 아니라 믿음으로 소문을 들었기에 정탐꾼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믿음으로 받지 않으면 신앙은 성장하지 않습니다. 모든 말씀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귀에 달콤한 말씀만 선택해 듣지 말고 심판의 말씀도, 질책의 말씀도 믿음으로 들어야 성숙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 편에 서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라합은 혹시나 잘되면 좋고 안 되면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정탐꾼을 살려준 게 아닙니다. 목숨을 걸고 그들을 선대했습니다. 가나안 사람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단한 시기입니다. 아직 하나님이 여리고를 무너뜨리지 않았을 때, 하나님이 일하시기 전에 라합은 하나님 편에 서기로 결단했습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시지 않는다면, 지금이 결단할 때입니다. 아직 병을 고쳐 주시지 않았다면, 경제적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면, 관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지금 주님 편에 서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결단을 성숙한 믿음으로 보십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소망해야 합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이 이미 전쟁에서 이긴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여리고보다 더 큰 애굽이나 아모리를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아직 전쟁 전이지만 이미 싸움의 결과를 믿음으로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라합은 자신 있게 자기를 건져 달라 요구했던 것입니다.(13절) 현실의 어려움만 보고 절망하면 안 됩니다. 앞으로 역사하실 하나님이 우리 삶에 펼치실 놀라운 기적들을 믿음으로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라합과 함께했던 같은 하나님입니다. 그분께 문제를 갖고 나왔다면 믿음으로 해결하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 편에 서기로 지금 결단하면 주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시고 반드시 역사하실 것입니다.
손성근 목사(부평우리감리교회)
◇부평우리감리교회는 ‘복음으로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교회’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를 통해 지역사회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길 소망하며 온 교우가 기도와 사역에 매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