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미국 대선의 의미

입력 2020-11-02 04:05

미국 대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특히 한국은 초미의 관심사다.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 가운데 누가 대통령이 되는지에 따라 한국의 유불리를 따지는 셈법이 복잡하다.

우선 미국의 쇠퇴라는 큰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의 미국’ 또는 ‘미국의 트럼프’ 중 후자가 맞는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트럼프라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대통령이 미국을 새로운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시작된 변화를 트럼프가 가속한다. 트럼프의 등장 자체가 원인이 아닌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의미다. 미국이 2001년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 수렁에 빠진 뒤 2008년 금융위기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이래 버락 오바마 행정부부터 ‘축소’와 ‘선택적 개입’을 통해 세계 경찰의 역할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중동에서 철수, 국내 개혁을 통해 미국의 쇠퇴를 막아보려 했으나 사실상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바로 이때 미국의 어려움이 이민자나 한국과 같은 미국의 전진 방어에 편승한 부유한 동맹국 탓이라면서 등장한 트럼프가 몰락한 미 중산층의 불만을 등에 업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은 미국의 쇠퇴를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는지, 나아가 미국 이후의 세계 질서를 어떻게 ‘설계’하는지가 달린 1945년 이후 가장 중요한 역사적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이 된다고 미국이 이전과 같이 모든 세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은 미국 쇠퇴에 대응하되 충격을 완화하고 다자 협력을 통해 질서 있는 조정을 시도할 것이다.

우선 바이든은 취임하면 첫날 트럼프가 탈퇴했던 국제기구와 국제협약에 재가입하겠다면서 다자주의 재건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가 권위주의 체제 지도자와의 친분을 내세우는 것과 달리 바이든은 민주주의 복원과 권위주의 대응을 우선시하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구성된 ‘민주주의 정상회의’도 공약한다. 동맹국 안보 공약의 핵심인 전진 배치 미군을 충분한 방위비를 내지 않으면 철수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트럼프에 반해 바이든은 한국 언론 기고를 통해 ‘한국을 협박하여 갈취하지 않고…, 동맹을 강화하면서 한국과 함께 설 것’임을 분명히 한다. 중국에 대해선 트럼프 행정부 못지않게 강경한 태도를 보이나, 기후변화와 핵 비확산 문제에 대해선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핵 비확산은 북한과 이란 핵 문제를 의미하므로 일관성을 상실해 중국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트럼프의 정책적 실패를 인지하고 있다.

한반도 정책으로 국한할 때도 바이든은 트럼프와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우선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조한다. 바이든 캠프의 외교·안보 전문가 집단은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규범을 공유하는 한·일이 역사적 어려움을 넘어서 지구적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작년 한·일 갈등의 와중에서 귀찮은 듯 “내가 꼭 나서야 하나”면서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트럼프와 비교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박근혜-아베 정부 간 갈등을 적극적으로 중재한 바 있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윌슨주의가 깊이 배어 있다. 세계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체제로 변환돼야 분쟁과 전쟁이 없어진다는 믿음이다. 그렇다면 공식적·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겠지만 북한 체제 전환이 바이든 행정부 대북 정책의 기저에 자리 잡을 것이다.

한국은 미 대선 결과에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와 바이든, 둘 다 문재인정부에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이 피를 흘려 쟁취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정말로 존중한다면 기준을 정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국제어문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