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대검찰청 청사 앞에 윤석열 총장을 응원하는 화환이 장사진을 이루는 것을 예사로 보아서는 안 된다. ‘대검 나이트’ 운운하는 건 민심을 모독하는 짓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정권이 5년 더 연장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눈에 특히 그렇다. 그들도 윤 총장이 임기를 마치자마자 대선에 직행하는 것이 무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라가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확신하는 듯하다.
그 심정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정답이 아니다. 윤 총장이 2022년 대선에 후보로 나서는 것은 본인은 물론 나라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현실성도 떨어진다. 자칫 집권 세력을 편든다고 오해받을 수 있지만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 거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는 선거를 경험한 사람 중에서 뽑는 것이 옳다. 국회의원이나 시장, 도지사 같은 선출직 공무를 담당해본 사람이 대선에 나서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 선거를 통해 철저하게 검증을 받기 때문이다. 나랏일을 맡겨도 될 재목인지 확연히 판별된다. 남다른 건강과 체력, 뱃심이 있어야 선거를 완주할 수 있다. ‘정치적 맷집’도 필요하다. 선거 운동에 따라다니는 비방과 음해 등 갖가지 곤욕도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권력의지’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불과 며칠 만에 꿈을 접었던 까닭을 알아야 한다. 권력의지가 강인하지 않은 사람은 대통령 후보가 될 자격이 없다.
윤 총장은 선거 경험이 없는 사람이다. 선거 과정을 한 번도 거치지 않은 채 곧장 대통령 후보로 나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도박이다. 미숙련, 아니 무면허 운전자가 모는 차를 타고 고속도로로 가고 싶은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는 선출직 경험 없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윤 총장이 정치를 통해 국가에 봉사하고 싶다면 국회의원 등 선출직 경력부터 쌓는 것이 필요하다. 다행히 아직 젊지 않은가.
둘째, 야당이 대통령 후보를 외부에서 찾는 것은 ‘희망고문’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 후유증으로 다음 대선을 제대로 치르지 못할 수도 있다. 이것 이상 더 큰 재앙이 어디 있겠는가.
한국 정당의 퇴행성을 보여주는 3대 악습이 있다. 위기 국면마다 당명을 바꾸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눈앞의 소나기를 피해간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걸핏하면 대통령 후보를 ‘외주’하려 든다는 사실이다. 정당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공직 후보, 그것도 대통령 후보를 내는 것이다. 대선에 후보를 내지 못하는 정당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국민의힘이 지금 그 상황이다. 윤 총장을 ‘여왕벌’로 모시자고 법석이다. 인물이 없다면서 자기 당 사람들을 도매금으로 욕보인다. 속성재배로는 작물을 튼튼하게 못 기른다. 정당이 자꾸 바깥에 눈길을 주면 내부 농사는 파탄을 면할 수 없다. 그것은 집권당에 둘도 없는 축복이 될 것이다.
지금 야당은 무슨 카드를 써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다. 40대 유권자 중에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사람은 9%에 불과하다. 여당 쪽은 50%나 된다. 현재 우리나라 40대가 전체 유권자의 19%를 차지하고 있다. 20대 30대도 비슷한 추세일 것이다. 당연하다. ‘꼰대정당’ 이미지를 불식시키지 않는 한 그 어떤 분칠도 효과를 낼 수가 없다.
국민의힘이야말로 ‘마누라 자식 빼고는’ 다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합리적, 진취적 신진세력이 당의 얼굴이 되어야 한다. 다음 대선도 어차피 1대 1 구도로 흘러갈 것이다. 중도확장이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를 생각해서라도 초재선 의원 등 새로운 인물들이 치고 나와야 한다. 그렇게 경험을 쌓아야 최소한 차차기는 기대할 수 있다. 희망은 쟁취하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젊은 정치인이 웅지를 품을 최적기가 아닌가.
그런데 그런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는 것인가. 이런 식이라면 야당의 미래는 없다. 현직 검찰총장에게 의탁해야 하는 정당이라면 집권은 언감생심이다. 더불어민주당의 ‘20년 집권론’은 현실이 될 것이다. 국민의힘이 될 것인지 아니면 국민의 고통만 가중할 것인지는 신진세력의 등장 여부에 달려 있다.
서병훈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