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덕분에 지구 저편에 한국 문화유산 알렸죠”

입력 2020-11-02 04:05
진옥섭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은 전통예술계 저변을 확장한 인물로 평가된다. ‘병신춤’의 공옥진, ‘만신’의 김금화 등 여러 인간문화재를 대중에게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최근 경복궁에서 세계적인 공연이 펼쳐졌다. 주인공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BTS). 9월 29일 근정전과 10월 2일 경회루를 무대로 각각 ‘아이돌’과 ‘소우주’ 공연이 펼쳐졌다. 두 공연은 9월 29일(한국시간)부터 10월 3일 닷새간 미국 NBC 프로그램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팰런쇼)을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됐다.

원래 이번 공연은 올해 6회를 맞은 궁중문화축전을 알리기 위해 기획된 행사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해외 관광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한국의 문화유산을 알려야 했다. “BTS가 경회루에서 춤을 추면 어떨까요?” 농담 섞인 직원의 말을 들은 진옥섭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은 곧장 전담팀을 꾸렸는데, BTS 소속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도 호응했다. 당초 BTS의 유튜브에 영상을 올릴 계획이었지만, 팰런쇼 측에서 편성 제안이 왔다. 진 이사장은 27일 국민일보와 만나 “덕분에 지구 저편에도 경회루를 알리게 됐다”며 “BTS 관광 코스를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진 이사장은 유연한 사고와 청산유수 말솜씨로 전통예술계 저변을 확장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유연함은 틀이 없다는 이야기 같다”며 “예술을 학문으로 접하지 않은 덕분”이라고 말했다. 남다른 시각 덕에 숨겨진 예인들을 발굴해 대중에게 알렸다. ‘병신춤’의 공옥진, ‘만신’ 김금화는 대표적 사례다.

전통예술을 향한 그의 애정은 각별했다. “전통이 낡았다고요? 천만에요. 국악 그룹 이날치의 인기 요인은 신선함 아닌가요?” 그는 청년 시절부터 전통이 좋았다. 성악도, 오페라도 접해봤지만 판소리를 듣는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그래서 무명 예인을 찾아 전국을 떠돌며 함께 공연해보자고 설득했다. 매번 욕을 먹었지만 “아유, 그런 걸 어떻게 해. 입을 엉덩이까지 쭉 밀어버리기 전에 저리 가!”하는 그들 특유의 해학이 좋았다. 포기하지 않았다. 기생, 무당, 광대, 한량으로 살고 있던 이들을 무대에 세웠고, 동네방네 전단을 돌리며 관객을 모았다. 이후 한국민속예술축제와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을 거쳐 2018년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에 선임됐다.

진 이사장의 대표 업적 중 하나는 무료가 대부분이던 전통 공연 분야에 유료화를 정착시켰다는 점이다. “지금은 출연진이 마지막 순서를 선호하지만 예전엔 처음에 하고 싶어 했어요. 관객이 중간에 나가니까요. 공연을 끝까지 보게 할 수는 없을까 생각하다가 유료화를 떠올렸어요. ‘본전 뽑아야지’하는 생각이 들게 끔요. 작품의 질은 자신 있었어요.(웃음)”

진 이사장은 공연 홍보물을 만들 때 검은 바탕 중간에 공연 사진을 크게 넣고, 맨 위에 공연 제목을 빨간색으로 썼는데 시간이 지나니 포스터만으로도 ‘돈을 내고 보는 공연’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이 말을 하는 그에게는 성취감이 묻어있었다. 원동력은 뭘까. “제게 전통은 늘 새것이었어요. 제가 깐 판에서 놀아준 예인들이 항상 새로운 공연을 보여줬죠. 모두 그들 덕입니다.”

진 이사장은 내내 ‘셸위풍류’를 말했다. 재단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 만든 사자성어다. ‘셸 위’(Shell we?)라는 권유 표현에 바람 풍(風)과 흐를 유(流)를 더했다. 모두가 전통을 즐기도록 하겠다는 재단의 방향성을 담았다.

이번 궁중문화축전에도 셸위풍류가 있다. 코로나19 탓에 봄에서 가을로 연기됐는데, 온·오프라인 프로그램을 병행하면서 시야를 확장했다. 집에서도 축전에 참여하듯 즐기면 어떨까. 재단은 경복궁 전각 팝업북, 조선왕실 사각유리등 키트 등을 만들어 신청자들의 집에 배달했다.

진 이사장은 전통예술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는 현상을 “경탄스럽다”면서도 조언해줄 말이 있는지 묻자 손사래를 쳤다. “지원해줄 수는 있지만 조언해주고 싶진 않아요. 제가 젊은 시절 그랬듯 이날치도, 앰비규어스도 자유로워야죠.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도록 가만히 있어 주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체성을 설명할 때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을 언급했다. “좋은 전통예술이 있어도 활용하지 못하면 있으나 마나죠. 누군가 묻더라고요. 3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또 그 무수한 세월을 지방을 떠돌며 예인을 발굴할 거냐고요. 네, 전통의 가치를 지켜야죠. 제 숙명인걸요.”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