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신웅 (20) “말씀 속에 살고 싶다”던 대도 조세형…

입력 2020-11-02 03:05
김신웅 장로(왼쪽)와 조세형(오른쪽 두 번째)이 2000년쯤 지방의 한 교회에서 간증 집회를 마친 뒤 당회실에서 사진을 찍었다.

교정 선교 38년 동안 많은 재소자와 출소자들을 만났지만, 잊을 수 없는 얼굴들이 있다. 대도 조세형과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이다.

조세형은 30~40대에 부유층 집을 골라 물건을 훔친 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줘 ‘현대판 홍길동’으로 불린 인물이다. 1983년 재판 중 탈주했다가 붙잡혀 15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출소 후 기독교인으로 변화돼 새 삶을 사는 듯했던 그는 2001년 일본 도쿄에서 다시 절도 행각을 벌이다 체포돼 일본에서 3년 6개월을 복역했다. 이후 조세형의 행보는 ‘대도’와 거리가 멀었다. 계속된 절도로 교도소에서 형을 살고 출소하기를 반복했다.

조세형과는 청송교도소에서 처음 만났다. 첫인상은 꽤 좋았다. 생각보다 미남이었다. 미소를 머금고 반갑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그의 모습에 나의 고정관념이 단숨에 깨졌다.

그에게 “성경을 읽느냐”고 물으니 “열심히 성경을 읽고 말씀 속에 살고 싶다”고 했다. 시간이 닿는 대로 그를 만났다. 세월이 흘러 그는 출소했다. 하나님을 만났으니 이제 죄를 범하지 않으리라 많은 사람이 확신했다. 그는 교정 선교를 위한 사무실도 열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다. 전국 교회를 다니며 간증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했다.

어느 겨울, 지방의 교회에서 함께 간증한 뒤 그와 한 방에서 잠을 자게 됐다. 내복을 입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날따라 내가 입고 간 내복의 무릎 부위가 많이 헤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그는 “장로님” 하고는 말을 잊지 못했다. 그 이튿날 청송으로 내려왔다.

며칠 후 그로부터 연락이 왔다. 급한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서울로 달려간 내게 “오늘 하루는 장로님과 같이 식사도 하고 옷도 사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우리 주변에 가난한 사람, 불쌍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을 위해 영혼 구원의 손길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 시간에 웬 쓸데없는 소리냐”고 질책하곤 청송으로 내려왔다.

하루는 그가 “중국인이 그린 고가의 그림”이라며 내게 선물을 했다. 집에 걸어둔 그 그림은 볼 때마다 참 멋있었다. 잠자리에 누워서 그림을 쳐다보고 있는데 아내가 “저것도 훔친 것 아닐까”라고 말해 웃은 적이 있다. 훗날 그는 “그건 훔친 거 아니에요. 어찌 형님한테 훔친 물건을 선물해드릴 수 있겠어요”라고 말했다. 농담처럼 묻긴 했지만,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개운해진 건 사실이다.

지난해 81세가 된 조세형이 대도란 별명에 걸맞지 않게 좀도둑질을 하다가 16번째로 구속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음이 아팠다. 그를 보면서 사람에게 박혀 있는 습관은 고치기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주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모두가 그럴 수밖에 없는 죄인이다. 오늘도 나는 교도소에서 후회하며 통탄하고 있을 조세형을 위해 기도한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